일본어에 오야붕 (おやぶん)과 꼬붕 (こぶん)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각각 왕초와 똘마니에 해당하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오야붕이 꼬붕을 함부로 대하는 줄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는 어미닭과 병아리의 관계인 것 같다. 다만 병아리들이 칼을 차고 있다고 상상하기 바란다. 어미닭은 병아리들을 품는다. 그러나 결코 병아리들이 깔려 죽을 정도로 낮게 품지는 않는다. 병아리들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병아리들의 안전 때문만은 아니다. 실은 병아리들이 무섭기 때문이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낮게 깔고 앉으면 병아리는 참다 못해 칼을 꺼내 어미닭을 찌를 수도 있다. 어미닭은 병아리들의 이런 특성을 잘 안다. 그래서 병아리들을 품되 늘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도록 조심하며 품는 것이다.
일본 유학시절 일본 학생과 대만 학생이 각자 자기 나라의 장기 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대만의 장기 룰은 우리와 거의 같았다. 그런데 일본 장기에서는 내 졸 (卒)도 상대방에게 잡히면 바로 그 자리에서 적군이 되어 나를 공격하는 공격수가 되는 것이었다. 배신이 일상 (日常)이 되어 있다고 할까? 내게는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졸이 상대방의 상 (象)이나 마 (馬)를 먹고 죽으면 장렬하게 잘 싸우다 죽은 것으로 치부한다. 졸을 함부로 사지 (死地)로 내보낸다. 상이나 먹고 죽으라고! 그래서 우리말에는 ‘누굴 장기판의 졸로 보느냐?’ 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런 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내 졸도 상대방에게 잡히면 칼을 돌려 나를 찌를 수 있기 때문에 만만하기만 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졸을 함부로 죽음판으로 내몰 수가 없다. 배신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배신의 가능성 때문에 일본에서는 장기판의 졸도 제법 존중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꼬붕은 물론 오야붕을 섬긴다. 하지만 오야붕이 지나치게 무시하면 칼을 꺼내 오야붕을 찌를 수 있다. 마치 병아리가 어미닭을 찌르듯, 또는 장기판의 졸이 배신의 칼을 돌려대듯. 오야붕은 꼬붕들의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작정 꼬붕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꼬붕들을 부려먹되 구슬리며 부려 먹는다. 결코 꼬붕들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무작정 깔고 앉지 않는다. 결코 장기판의 한국식 졸로만 보지는 않는 것이다.
내가 서울약대에 다닐 때, 약대의 각 연구실 체제는 2-3명의 교수가 한 주임교수의 밑에 놓여있는 소위 교실제이었다. 이 제도는 약대 캠퍼스가 관악으로 옮겨질 때까지 오랫동안 약대의 연구실 문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는 실은 일본의 대학들을 흉내 낸 것이었다. 즉 일제 치하에서 해방이 되어 학교를 급히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서울대학교는 한 연구실에 2-3명의 교수를 소속시키면서 가장 연장자를 주임교수로 임명한 것이다.
이 교실의 주임교수는 일본 대학의 주임교수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연구실 내의 후배 교수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본의 주임교수가 어미닭처럼 후배 교수들을 조심해서 품는 것은 미쳐 보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늘 후배 교수들이 건방지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단지 2-3년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주임교수 자리를 놓친 후배 교수들은 주임교수에 대해 ‘언제부터 자기가 주임교수이었나?’ 하는 불만을 갖게 되었고, 결국 주임교수라는 어미닭을 따르지 않았다. 세월이 감에 따라 교실제는 교수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나쁜 제도로 치부되어 1990년대부터 급속도로 붕괴되었고, 마침내 조교수든 정교수든 모든 교수가 1:1로 대등한 권한을 갖는 오늘날의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꼬붕에 대한 배려가 없는 오야붕 제도의 사필귀정 (事必歸正)이라고나 할까? 사람을 장기판의 한국식 졸로 보는 사회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는 법이다. 칼의 나라 일본에서 배우는 민주주의의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