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醫政)갈등 장기화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 설상가상 의료기관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짐에 따라 직접적인 손실을 입게 된 병원은 물론 주변의 문전약국,유통업체, 제약업계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되는 양상으로 실제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일부 대형병원들은 거래업체에 공문을 보내 의료공백이 장기화됨에 따라 병원의 자금 압박이 심해지고 이로 인해 대금 지급시기를 3개월이상 지연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고지했다. 적용대상은 의약품, 진료재료, 의료기기, 의료소모품 등이 모두 포함돼 있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꼴의 유통업체는 예상치 못한 자금경색으로 인해 흑자도산까지 우려되는 상황으로 제약업계의 협조를 요청하고 나섰다. 의료계·유통업계·제조업계 전반에 매출부진으로 인한 나비효과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불똥은 의료계 내부로도 번지고 있다. 의협의 새 회장이 선출되었지만 정부와의 대화와 타협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와중에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의 대안으로 한의과대학을 폐지하고, 그 정원을 의대 증원에 활용하자는 모 의대 교수의 주장이 일부 언론을 통해 발표된 이후 이에 반대하는 한의계의 반발이 이어지는 등 양한방 갈등도 격화될 조짐이다.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박 모 교수는 한 일간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의과학과·한의대 정원을 활용하면 의대 정원을 늘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고 한의대 중에서 의대 전환을 원하는 데가 많으니 이를 활용하자며 12개 한의대 750명 정원 중 경희대·부산대·원광대·동국대 등 의대·한의대를 함께 둔 5개 대학의 정원 350명을 먼저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같은 보도가 나온 직후 한의계는 전직 한의협회장 모임체인 명예회장단 성명을 통해 우리민족과 역사를 함께한 한의학을 의대 증원의 명분으로 없애버리자는 말은 정상적인 학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또 한의계 원로모임 성명을 통해 지금 세계적으로 서양의학계가 한계점에 도달해 동양의학에서 대안을 찾고 있는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것 같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경우 명치유신 때 한의학을 과학화 한다는 명분을 내새워 의료일원화를 실시했고 그 이후 일본의 한의학은 사라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늘리는데 왜 한의과 대학을 없애자는 것이냐, 의대증원 핑계로 눈엣가시 같은 한의학과 한의사제도를 없애 버리자는 주장에 불과하다며 혹여 이면에 어떤 정치적 배경이 깔린것은 아닌지 경계하는 모습이다. 경희대 한의대 학생회도 자체 설문조사 결과 약 80%에 해당하는 대다수 학생들이 의대전환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해당내용의 정정과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렇듯 전공의 사직과 뒤이은 의대교수 사직으로 야기된 의료계 파행은 거의 두 달을 넘기는 시점에서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한채 의정갈등은 강대강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총선을 앞 둔 여야 정치권은 중재를 자임하고 있지만 뽀족한 수는 없는 듯하다.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국민을 위한 선택인만큼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절대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정작 국민들은 답답하고 공포심과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의대정원 이슈가 정권유지 명운을 걸 만큼 정쟁의 대상이 되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정작 본질은 벗어나 변죽만 울리는 가운데 아픈 환자들과 국민들은 지금 현재 상황 자체가 괴로울 따름이다.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합의가 필요하다는 안팎의 주문도 이제는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