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훈 (소설가, 서울시약사회 문화복지위원장)불꽃같은 정열과 격렬한 필치로 색채를 표현하던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불안정한 청년기를 보냈다.
생전에 한 개의 작품도 팔지 못한 그는 동료 화가들로부터의 외면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여자들을 향한 구애도 번번이 거절당했다. 오직 한 사람이 OK했으나 그 부모의 반대로 자살해 버리자 지병이던 그의 조울증은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스스로를 인생의 실패자라고 스스럼없이 공언하던 그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기이한 행적을 일삼다가 급기야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유사이래 가장 추앙 받는 화가의 반열에 우뚝 세웠으며(19세기), 그를 두고 인생의 실패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상대성 이론의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역시 뒤쳐지는 아이 혹은 문제아로 취급받던 불안정한 유년시절이 있었다. 어떤 일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시간과 담을 쌓아 버리기 일쑤고 고집 또한 황소 같아서, 6살 때 초등학교에 입교했지만 중등학교에서의 부적응으로 결국 그의 집 하숙생이던 대학생으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은 그 역시 유사 이래 가장 추앙 받는 과학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기다려줬으며(20세기), 이제 그의 어린 시절을 두고 학습지진아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행동이나 마음의 상태가 극에서 극을 내달리는 양상을 가리켜 양극성장애(bipolar disorder)라 칭한다.
고흐의 만년 지병이던 조울증의 새로운 이름이다. 요즘 돌아가는 행태를 보면 우리 정부야 말로 양극성장애 속을 허우적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퇴임 후 조용히 귀향하겠다던 이임 대통령 고향마을의 꽃단장 풍경이 그렇고, ‘옳고 그름’보다 ‘다름’을 지향하며 좌충우돌하는 듯한 인수위원회의 행태가 그렇고, 늦어지는 인사청문회로 어느 부처에선가는 한시적으로 두 명의 장관이 근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이한 예측이 그렇다.
하면, 지난 시대의 고흐나 아인슈타인처럼 스스로 우뚝 서 줄 때까지 세월을 쏟아 붓고만 있을 것인가.
속도의 시대인 이 21세기의 현답은 ‘아니올시다’다. ‘틀렸다’라고 명백히 지적해야 할 상황 앞에서조차 세월유죄를 핑계로 침묵하는 건 기회주의적 발상이다.
불쑥 튀어나오는 정책들이 극과 극을 내달리는 불안정한 시절이기에, 아닌 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올곧은 여론이 더 필요한 거다. 소문 분분하던 여성부와 보건복지부의 합병이 무산된 이면에는 이런 꼿꼿한 주장들이 버팀목 역할을 했다.
국민연금법 개정, 일부 일반약의 의약외품으로의 전환 가능성 등 제 목소리를 방패삼아야 할 난제들이 산 너머 산이다. 세월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는 리얼타임시대, 바야흐로 인식의 더듬이를 다듬어 곧추세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