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인가, 붕괴인가…약가 개편안 둘러싼 긴장감 고조
"매출 3.6조원 손실-R&D 중단 ..사라지는 양질 일자리 1.4만 개-제약 생산기지 지방경제도 휘청"
"생존 기반 훼손 '뼈 깎기'인가..제네릭은 보건 안보 최후 보루-'일본식 약품 품절 사태' 남일 아니다"

김홍식 기자 kimhs423@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2-23 06:00   수정 2025.12.23 06:59
지난 22일 5개 주요 단체로 구성된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거대한 변곡점에 섰다. 정부는 "제네릭 의존도를 낮추고 혁신 신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업계는 "기존 수익원이 고갈되면 혁신을 위한 체력 자체가 바닥날 것"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지난 22일 5개 주요 단체로 구성된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약가 개편안을 강력히 비판과 함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앞서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언론사에 'K제약바이오 도약시킬 '약가제도 개선'' 기고문을 내고 "약가제도 개선이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의 혁신 동력을 일깨우고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혁신 의지와 제약업계의 생존권 투쟁이 맞붙은 현 지점을 3대 쟁점으로 짚어본다.

쟁점 1. 혁신을 위한 '군살 빼기' vs 혁신을 막는 ‘동력 상실’

보건복지부 이형훈 제2차관은 기고문을 통해 한국 제약산업의 '체질 개선'을 역설했다. OECD 평균보다 2.17배 높은 제네릭 약가 구조가 오히려 기업들을 안주하게 만든다는 진단이다.

정부는 "매출액 대비 R&D 비중 8%(글로벌 빅파마의 1/3)"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개선하기 위해, 비효율적인 제네릭 산정 체계를 고도화하고 그 절감액을 신약 가치 반영과 '약가 유연계약제' 등에 재투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이에 대해 윤웅섭 비대위 공동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연간 3.6조 원의 손실은 곧 R&D 중단"을 의미한다고 맞섰다. 수익의 1%가 줄면 R&D는 1.5% 감소하는 산업 특성상, 신약 개발의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하는 제네릭 약가를 인하하는 것은 혁신의 뿌리를 뽑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국내 약가 제도에서 제네릭(복제약)의 가격은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최대 53.55%까지 인정받고 있다. 정부의 개편안이 이를 4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할 때, 실제 제약사가 체감하는 인하율은 다음과 같다.

즉, 특정 품목의 약가가 단순히 13%p 깎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받던 매출액의 4분의 1(25.3%)이 한순간에 증발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2024년 예상 약품비 데이터를 기준으로 산업 전체에 미칠 파급력을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위 산식의 26.8조 원은 2024년 기준 건강보험 총 약품비 추산치다. 그리고 53.0%은 국내 시장에서 제네릭 의약품이 차지하는 금액 비중이다. 이는 이형훈 차관의 기고문에서도 언급된 높은 제네릭 의존도와 일치한다.

따라서, 산출된 3.6조 원은 국내 상장 제약사 전체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거나 넘어서는 규모이다. 단순히 매출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약산업의 수익 구조를 건드린다는 점이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비대위는 Phillipson & Durie(2021)를 인용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기업 수익이 1% 감소할 때 R&D 활동은 1.5% 감소한다. 3.6조 원의 매출 감소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미래 먹거리인 신약 파이프라인 수백 개가 동시에 폐기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쟁점 2.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약가 우대'로 가능할까?

양측 모두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법론에서는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퇴장방지의약품의 원가보전 기준을 현실화하고, 수급 불안이 우려되는 의약품에 대해 약가 우대를 부여하는 등 '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반면 조용준 비대위 부위원장은 개별 품목의 우대보다 '산업 전체의 채산성'을 지적한다. 약가 인하 기전이 반복되면 일본처럼 제네릭 품목의 30% 이상이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사태가 올 수 있으며, 이는 원료의약품 자급률(30%대) 하락과 맞물려 '보건 안보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 부위원장은 약가 인하가 불러올 '공급망 붕괴'에 주목했다. 저가 정책이 결국 국내 생산 포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의 경우 잦은 약가 인하로 인해 제네릭의 32.1%(4,064개 품목)가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필수의약품의 사각지대가 더욱 심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미 2025년 1월~11월 사이 발생한 공급 중단·부족 275건 중 38.6%가 '채산성 부족' 때문이었다. 항생제, 분만유도제 등 국민 생명과 직결된 약제들이 시장에서 사라질 위험이 크다는 분석이다.

끝으로 현재 30% 수준인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더 하락할 경우, 중국·인도 등 해외 의존도가 심화되어 지난 요소수 사태로 산업에 위기가 온 것 처럼 글로벌 공급망 위기 시 속수무책이 된다.

쟁점 3. 고용과 유통 질서...'양질의 일자리'는 유지될 수 있는가?

정부는 이번 개편이 '혁신 신약 개발을 진흥하는 후원자 역할'임을 강조했으나, 업계는 당장 닥쳐올 '고용 대란'을 공포로 받아들이고 있다.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류형선 비대위 부위원장은 제약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4.11명(매출 10억당)으로 반도체(1.6명)의 2.5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또 매출 3.6조 원 감소 시 산술적으로 1만 4,800명의 실직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제약업은 정규직 비중이 94.7%에 달하며, 연구직의 69.2%가 석·박사급이다. 이들의 실직은 국가적 인적 자산의 손실이 있다는 점이 뼈아픈 대목이다.

아울러  전국 17개 시·도에 분산된 650여 개의 생산시설과 200여 개의 연구시설은 지역 경제의 버팀목으로 고용 감축은 곧 지방 소멸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김영주 기획정책위원장은 정부의 약가 관리 강화가 오히려 시장형 실거래가제의 부작용인 '1원 낙찰'과 CSO(영업대행사)를 통한 변칙적 영업을 부추길 것이라 우려했다. 정부는 '합리화'를 말하지만, 시장은 '혼탁'을 예견하는 양상이다.

이형훈 차관이 기고문에서 인용한 토머스 쿤의 말('패러다임 전환이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탈피할 때에만 가능하다')처럼, 기존 관점을 탈피하는 패러다임 전환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그 고통이 산업의 '사망'이 아닌 '성장통'이 되기 위해서는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이재국 비대위 국민소통위원장은 "산업 현장의 실질적 영향을 고려한 공식 협의 체계"를 강력히 요청했다. 

결국 정부의 혁신 의지가 현장의 비명이 아닌 박수를 받기 위해, '재정 절감'과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정교한 민·관 협력 거버넌스 구축이 이번 개편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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