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과 예술이 만날 때, 전통적인 학술대회는 어떻게 변할까. 오가노이드 디벨로퍼 컨퍼런스 'ODC25(Organoid Developer Conference 2025)'는 이 질문에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응답했다.
ODC25는 오가노이드(Organoid) 기술 발전과 응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열리는 연례 국제 컨퍼런스다. 올해 7회를 맞았다. 지난 13일과 14일 서울 강서구 마곡 코엑스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과학 심포지엄을 넘어, 생명과학과 예술, 대중이 공존하는 혁신 과학 문화 축제로 재탄생했다.
특히 이번 해는 'A Festival of Science, Arts & Culture - 과학과 예술이 함께하는 새로운 페스티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과학 기술과 인문, 예술이 유기적으로 엮이는 독창적 시도를 펼쳤다. 주최 측은 “ODC는 학술 컨퍼런스를 넘어, 미래를 위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행사 의미를 강조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 등을 기반으로 인체 외에서 만들어진 3차원 조직 모사체를 말한다. 모사체는 쉽게 말해 'COPY' 복사했다는 뜻이다. 사람의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제작된 오가노이드는 인체 장기의 기능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에서 발생하는 암과 다양한 질환의 특성도 띨 수 있다. 이는 의약품 개발, 질병 진단 등 의약학 전반에서 활용할 수 있는 차세대 혁신 기술이다.
ODC25 핵심은 '융합'이었다. 차병원·차바이오그룹 차광렬 글로벌 종합연구소장은 환영사에서 “이번 컨퍼런스가 오가노이드 분야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데 길을 열 것”이라며 “과학과 인문, 산업과 학문이 융합하는 용광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목을 끈 발표 세션은 오가노이드 기반 치료제 '아톰-씨(ATORM-C)' 임상 데이터 발표였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이경진 CTO는 “아톰-씨 치료 후 6개월간 중간 분석 결과에서 75% 이상 치유율이 확인됐고, 한 달 만에 궤양이 완전히 사라진 사례도 나타났다”면서 “오가노이드는 공상과학의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 치료 솔루션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치료제는 현재 임상연구가 진행 중이며, 재생의학의 판도를 바꿀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받고 있다.
오가노이드 기반 정밀의학 바이오텍 포도테라퓨틱스 김정은 CTO도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정밀의료 플랫폼을 소개했다. 특히 위암·폐암 환자의 샘플에서 유래한 오가노이드를 기반으로 면역항암제 및 표적항암제 반응을 예측하는 실험을 수행하고, 실제 임상 결과와의 상관관계를 도출한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해당 플랫폼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의 협력을 통해 환자 샘플을 이용한 공동 임상으로 진행됐다. 향후 고비용 항암제의 효용 극대화와 치료 반응 예측 정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번 행사에서 발표 세션 참여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호응을 얻은 건 예술과 과학의 융합 전시였다.
대전문화재단이 주관한 'Bio + Collage: 살아있는 유기체와의 상호작용' 전시는 관람객을 과학과 예술의 경계선으로 이끌었다.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짝을 이뤄 협업한 전시물들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험으로 구성돼 큰 호평을 받았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는 최혜경 작가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경륜 박사의 협업 작품인 약물동태학과 존재론적 질문을 예술로 풀어낸 ‘마이크로그래피아’다. 3D 프린팅과 애니메이션, 지클레이 프린트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약물의 생체 내 이동 경로, 세포 간 상호작용, 존재의 단위인 '홀론'에 대해 관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생명과 물질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염인화 작가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영전 박사가 함께한 설치 작업 ‘사우나 랩’은 '기후위기와 생존 조건'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퍼포먼스형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이 전시는 온천과 사우나라는 익숙한 공간을 재해석하여 다문화, 고령화, 기후 문제를 융합적으로 풀어냈다.
소수빈 작가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상헌 박사가 공동 제작한 작품 ‘예술과 식물 사이에 위장’은 식물의 신호 반응을 시각화한 LED 설치물은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간의 커뮤니케이션 가능성을 탐구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기능을 갖췄다. 작품은 화석과 식물, 인공 지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생태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번 전시는 정보 전달을 넘어서, 관람객 스스로 생명과학의 가치와 의미를 상상하게 했다. 미학적 체험과 과학적 인사이트가 뒤섞이며, 과학도 예술처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가 곳곳에서 실현됐다.
ODC25는 연구자나 업계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활짝 열린 행사였다. 참여하고 즐기는 과학을 실현한 것이다. 전시관 한편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인터랙티브 체험 프로그램이 열렸고, 청소년과 대학생을 위한 특별 강연도 마련돼 과학의 장벽을 낮췄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유종만 대표는 “오가노이드는 향후 동물실험을 대체할 핵심 기술, 나아가 인공장기로 진화할 것”이라며 “ODC 콘퍼런스는 오가노이드 기술의 진보를 알릴 뿐 아니라, 혁신 과학기술의 가능성을 사회와 함께 공유하는 플랫폼”이라고 이번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올해 ODC25는 등록자 3000명, 실제 참가자 2000명 이상, 50여개 전시 부스를 기록하며 규모와 콘텐츠 양면에서 역대급 성과를 거뒀다. 산업계, 학계, 공공기관이 모두 참여해 생명과학의 흐름을 조망하고, 실질적 비즈니스 네트워크도 형성됐다.
ODC25는 과학 기술이 더는 실험실 안에만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참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예술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며, 누구나 함께 즐기고 상상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지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 참관객은 “처음에는 오가노이드가 너무 전문적인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예술 작품과 함께 접하니 오히려 더 쉽게 다가왔다”면서 “바이오 기술이 이렇게 감성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과학도 공감과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