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에게 숨겨진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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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03-10 17:35   수정 2006.09.15 15:21
▲ 안승호<한국유나이티드 연구소 소장>
사마리아 지역은 베들레헴의 북쪽에 위치한 사막 지대로 살기가 여간 불편한 곳이 아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그 곳에 살기를 꺼려한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북쪽에 위치하여 외적의 침입이 잦아서 여인네들이 정조 면에서 희생을 많이 받은 곳으로, 혼혈이 많이 이루어 졌고 따라서 혼혈아의 아픔의 상처를 갖고 있는 곳이다.

예수 당시에 갈릴리로 가려면 넓고 황량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마리아 지역을 꼭 지나가게 됐는데, 예수께서도 갈릴리로 갈 때에 구태여 우회하지 않고 일부러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면서 사마리아 사람과의 접촉을 의도한 바가 있다.

그것도 일부러 저녁을 택하여 그 곳에 이르고, 우물가에서 해 진 후의 어둠 가운데 물 길러 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게 된다.

손가락질 받는 여인, 창기인 여인이기에 낮을 피하여 해 진 후의 우물을 찾는 여인을 만나고자 한다.

때마침 한 사마리아 여인은 훤칠한 키의 남정네가 그에게 다가와 마실 물을 줄 것을 요청하니, 사마리아 여인으로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내심 물을 건네 주면서 묻기를 “어찌하여 유대인이 상종하기를 꺼리는 천한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건네느냐?”고 반문을 한 즉 대답하되, “만약 너 사마리아 여인이 어느 사람이 있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를 그에게 구하면, 그 사람이 너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 생수를 아니 주겠느냐?” 하고 오히려 반문으로 사마리아 여인을 설득시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를 부언하면, 사마리아인이나 유대인을 막론하고 믿음을 갖고 구하는 자에게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가 주어진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고, 그 여인은 비록 남편 다섯을 거느린 창기이나 내면의 마음은 한 없이 맑고 순진하여 마르지 않는 생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알려 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요한복음 4장)

비극의 주인공 호세아(구약 호세아서)는 예언자이면서 선지자로 하나님의 명을 받아 사마리아 여인인 고멜을 부인으로 맞아 처음에는 지극히 부인을 사랑하고 아끼며 아들딸 번갈아 낳아가며 잘 살았는데, 원래 바람기 있는 부인 고멜은 집을 뛰쳐나가 외지인과 사랑에 빠지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많은 빚을 지고 그로 인하여 볼모가 되어 창기촌에 갇히게 되자 남편 호세아는 천신만고 끝에 그녀를 찾아내어 값진 은 잎과 보리쌀을 갖다 주고 그녀를 데려오곤 한다.

그 때마다 호세아는 고멜에게 말하기를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쫓지 말 것을 당부하지만, 비련의 호세아는 번번이 속으며 창기가 되어 집 나간 고멜을 찾으러 방방 곡곡을 뒤지지 않으면 안 되는 주인공이 되고 만다.

이렇게 호세아는 시련을 반복하며 아내를 찾아 다녀야 하고, 불의의 아내를 용서할 수 밖에 없는 비극이 일어난 곳도 사마리아 지역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께서 한 동네에 이르렀을 때, 한 여인이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져와 예수님 발에 바르고 머리털로 문질러 씻고, 또 그 발에 입을 맞추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죄를 많이 지은 여인으로 규정지은 죄인이다.

그 당시 여인이 죄인이라 함은 간음을 하거나, 몸을 파는 창기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사건의 발생지도 지금 미루어 생각컨대 사마리아 지역이 아닌가 하고, 그 여인도 사마리아 여인임이 거의 맞을 듯한 추측을 한다.

엎드려 경배하며 입 맞추는 여인, 비록 천대받는 직업과 천대받는 계급 속에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머금고 있지만 그 속 마음에 흐르는 순정은 얼마나 깊고도 고운지를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렵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언제나 바라고 기다리는 그 무언가의 소망을 갖고 있었고, 옥합 속의 향유를 문질러 발라주고 입맞추는 여인에게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의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순수한 정감과 순정이 있었기에 저주받은 곳이라고 낙인이 찍혔던 사마리아 지역도 인간미가 훈훈히 흐르는 곳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호세아가 고멜을 포기할 수 없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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