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의약품 광고 역사와 광고심의 제도 변화를 담은 의약품 광고심의 30년사 '의약품 광고심의 30년, 그 의미와 나아갈 길'을 발간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광고 역사속에서 의약품 광고를 사례별로 정리, 의약품 광고의 가치를 조명한 ‘의약품 광고심의 30년사’는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130여 년에 걸친 의약품 광고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시대별 주요 변천 사를 정리했다.
△ 1886~1900년
• 독일인 회사 세창양행의 말라리아 치료제 ‘금계랍’ (1896, 독립신문)
-우리나라 최초 의약품광고 역사는 말라리아 치료제 ‘금계랍’으로, 이는 부인들 사이에서 신통한 약이라고 소문났으나 약물이 오‧남용되거나 가짜약품들로 유통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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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제조한 최초 의약품 광고도 독립신문에서 발현됐다. 이는 어린아이가 소화불량으로 고통스러워한다면 찾아와서 사다 쓰라는 내용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과 부산, 원산, 인천의 개항이후 조선에는 서양의 물품들이 개입됐다. 새롭게 들여온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소개 매체가 필요했고, 이에 한성순보, 한성주보, 독립신문, 황성신문 등이 창간됐다.
△ 1900~1910년 =1900년대 초반에는 다양한 신문매체에서 의약품 광고를 흔히 접하게 됐다. 또한 활자중심의 광고에서 일러스트레이션 광고로 표현방식이 변화됐고 간판, 플래카드 등의 수단도 활용됐다.
주로 동화약방, 제생당, 화평당, 개풍국 등에서 한방처방에 기반한 복용이 쉬운 의약품들을 생산‧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를 신문에 광고했다.
• 동화약방 ‘활명수’ (1909, 대한매일신문)
-동화약방은 궁중비방과 서양약학을 혼합해 복용에 용이한 위장약 ‘활명수’를 광고했다. “우리의 정신으로 공익을 위해”라는 기업 철학과 “전통적인 동향의 지식과 서양의 새로운 발명이 서로 합해 하나가 되었소”라는 키메시지가 담긴 광고이므로, 이는 지금 시대 제약광고와 많이 닮았다는 평가다.
△ 1910~1945년 =일본의 지면통제, 검열 등 조선 언론탄압이 지속됐고 광고산업은 일본 기업 상품이나 일본 광고주에 의해 운영됐다. 일본 제품을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션, 기사형 광고, 시리즈 캠페인, 우편주문 광고, 섹스어필 광고 등 다양한 기법과 양식으로 접근했다. 당시 상품판매 만을 목적으로 한 과대 과장광고가 난무했지만, 의약품 광고시장에 양적‧질적 성장이 이뤄져 광고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인식되기도 했다.
• 일본츠무라제약 ‘중장탕’ (1937, 동아일보)
-산전‧산후장애, 생리불순, 냉증, 불면증 등에 효과 있는 의약품 ‘중장탕’의 광고에 정구복 차림의 여성사진 사용했다. 이는 기술과 기법의 진보와 함께 일본 군국화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 유한양행 ‘네오톤토닉’ (1930년대)
-유한양행은 자양강장제 의과학적 작용원리 해설을 광고에 담았다. 과대 과장광고가 난무했던 시기에도 약물 작용원리를 담은 전단지 형식과 내용은 계몽적이고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 1945~1960년대 중반=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점차 의약품의 국산화가 이어졌다.
항생제, 진통제 등 전문의약품과 비타민, 자양강장제 등 일반의약품의 소비가 함께 증가해 제약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의약품 광고를 본격적으로 전개했고, 국산 의약품 광고가 상업적 측면에서 전성시대를 맞게 됐다. 당시 한 두 개 히트상품만으로도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었고, 제약사들은 유명 의약품을 쫓아 비슷비슷한 일반의약품을 양산했다.
• 일동제약 ‘아로나민’ (1966, 현대경영 창간호)
- ‘체력은 국력’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세계 챔피언 김기수를 모델로한 광고를 발행했다. ‘아로나민’은 이를 통해 비타민 시장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 동아제약 ‘박카스’ (1964, 동아일보)
-동아제약은 생명력과 젊음이라는 컨셉을 도입하여 식욕증진, 피로회복, 음주전후 해독, 피부미용, 간장기능 강화, 연탄가스 중독해독에 이르기까지 가히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박카스’의 효과를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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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후반~1970년대=의약품 광고의 수와 비용은 증가했고, 제약사 광고담당자들은 ‘광고의 합리화와 과학화’를 주장하며 약진하는 시기였다. 마침내 1966년 대한약품공업협회(現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내 의약품 PR구락부라는 광고협의회 기구가 출범했다. 의약품 PR구락부는 주로 제약광고물량의 축소, 단가 책정 등에서 신문매체와 대립했다. 따라서 광고산업에서 주류를 이루던 의약품 광고 비중이 축소됐다.
한편 광고에 의존하던 제약업계는 치료제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의약품 원료합성단계부터 시작하자’는 슬로건 아래 정책변화를 도모하게 됐다.
• 종근당 기업광고
-종근당은 ‘당신이 주무시는 한밤에도 종근당의 연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라는 슬로건의 광고로 치료제 개발의 의지를 표현했다.
△ 1980년대
• 한일약품 ‘화이투벤’
- ‘화이투벤’의 목감기, 몸살 감기, 기침 감기 등 효능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내용의 광고를 진행했다.
• 부광약품 ‘코리투살’
- ‘코코코 코리투살’이라는 인상적인 카피로 감기약인 코리투살을 소비자에게 각인시켜 제품의 매출을 높였다.
-만병통치식 과장 광고 방식이 점차 사라지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는 의약품 본연 사명에 충실하도록 제품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광고가 많아졌다. 또 의약품 광고에 창의성(크리에이티브)를 추가하며 신선한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 1990년대=의약품 광고 관리 정책과 위반 광고의 처벌규정을 강화하였다. 과대포장이나 허위광고 등은 처벌 대상이 됐다. 이러한 규제 상황에서도 제약광고의 질적 수준은 진일보했다.
• 솔표조선무약 ’우황청심원‘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야‘ 등 전통의 가치를 의약품과 연결시키며 의약품 광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사례로 평가한다.
-특히 제품 효능과 효과를 직접 묘사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경쟁우위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려 노력했고, 시리즈나 캠페인 형태의 장기적 광고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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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제약 ‘우루사‘
-대웅제약 우루사-간때문이야 TV광고는 기업명을 각인시키기 위한 요소들이 추가돼 기업 인지도를 높인 광고로 꼽힌다.
<의약품 광고 변천사>
시기 |
연도 |
설명 |
대표 의약품광고 |
초기 |
1886~1990년 |
◦ 우리나라 의약품 광고의 시작 |
금계랍, 보영산 |
전기 |
1900~1910년 |
◦ 구한말 개화기의 의약품 광고 |
활명수 |
일제강점기 |
1910~1945년 |
◦ 일제강점기의 의약품 광고 |
중장탕, 네오톤토닉 |
근대 |
1945~1960년 중반 |
◦ 현대광고의 태동기 |
아로나민, 박카스 |
발전기 |
1960년대 후반~1970년대 |
◦ 광고산업의 발전을 주도했던 PR구락부 |
종근당 기업광고 |
진화기 |
1980년대 |
◦ 의약품 광고 시장의 변화와 광고전략의 진화 |
화이투벤, 코리투살 |
현대 |
1990년대 |
◦ 의약품 광고의 규제 강화와 광고시장의 구조조정 |
우황청심원 |
2000년대 이후 |
◦ 의약분업 도입에 따른 의약품 광고 |
우루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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