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굉장히 게으른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를 대신할 아바타를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의료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의 탄생은 게으른 의사 한 명의 머릿속에서 시작됐다. 그는 과부하에 가까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오류를 줄이며 효율적으로 일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엑셀 프로그램의 함수를 활용한 단순 로직을 시험삼아 적용해 본 그는 뭔가 반짝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거 되겠구나’ 싶을 때쯤 우연히 인공지능 분야를 개척한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제프리 힌튼 교수의 강연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허황되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됐다. 이후 그는 또 한 번의 계기를 마주했다. 프로바둑기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었다. 바둑 마니아인 그는 인간과 AI의 대결을 바라보며 AI라는 거대한 흐름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그 길로 회사를 차리고 환자의 상태 악화를 예측하는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이른다. 에이아이트릭스 김광준 대표의 얘기다.
“모든 일을 사람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지만 몸이 귀찮거나 시간이 부족해 버거운 때가 있잖아요. 그런 일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이 두 개일 수는 없으니 저를 대신할 아바타를 두는 거죠.”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향후 AI가 진출할 미래 의료현장의 모습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인간인 이상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으므로 AI 의사가 동네 병‧의원 의사의 절반을 대체할 거란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의료계 입장에선 다소 불편한 말이지만, 막으려해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그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현장을 예로 들며 의료계가 AI를 수용하는 미래 모습을 내다봤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국하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세돌 9단이 처음엔 웃어요. 제가 보기엔 황당해하는 웃음이었어요. 잠시 후엔 언짢아하는 표정이 나와요. 고수와 하수의 대결에서 하수가 고수를 혼란케 하려고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마치 그런 모습을 본 듯한 표정이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수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알게된 거예요. 그러다 나중에는 포기하는 얼굴이 보입니다. 당시 이를 바라보는 팬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의료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의료계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 거라 예상합니다. 처음엔 부정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수긍하고, 거기서 좀 더 발전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고, 상호보완적으로 갔다가 나중엔 AI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때가 되면 의사의 역할은 점점 환자를 정서적으로 지지하거나 호스피스의 형태로 바뀔 거라 생각합니다.”
이같은 생각에 이른 그는 인공지능 기술자가 아닌 의사가 직접 의료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어차피 인공지능이 의사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하게 될 거라면 의료현장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만드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그는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저는 의사라서 환자 진료에 필요한 게 뭔지 먼저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제 사업과 기술개발의 중심은 기술이 아닌 환자입니다. 회사를 키우려면 가장 빨리 사업화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게 맞지만,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환자 진료에 꼭 필요한 걸 만들고 싶었어요.”
환자한테 필요하지만 의사가 하기 어려운 것은 ‘미래 예측’과 ‘모니터링’이라는 그는 AI에게 24시간 쉼없는 환자 모니터링을 맡기고, 그렇게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의 미래를 예측하도록 했다. 그렇게 환자상태 악화 예측 AI솔루션인 ‘AITRICS-VC(VitalCare)’가 탄생했다.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의사 역량에 좌우되는 의료현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AITRICS-VC(VitalCare)’는 병원 내 축적되는 실시간 EMR 정보를 AI가 분석해 환자의 상태 악화를 조기에 예측함으로써 의료진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가령 몇 시간 뒤 환자에게 심장마비가 오거나 갑자기 중환자실로 가야 할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예측되면 의료진이 이를 사전에 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MR 데이터 19가지를 활용하고, 일반병동 내 중증이벤트와 패혈증, 중환자실에서의 사망을 조기 예측하는 점이 특징이다. AI 예측 점수를 통해 고위험 환자를 빠르게 선별해 의료진의 치료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제품의 단일기관, 단일군, 후향 확증 임상시험 결과 높은 수준의 예측 정확도와 우수한 성능이 입증됐다고 전했다. ‘AITRICS-VC(VitalCare)’는 2022년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 완료 후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같은 해 12월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됐으며, 올해 1월 식약처 혁신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제조기업 인증을 받는 등 다양한 기술과 특허를 보유하게 됐다. 평가유예 신의료기술로 고시돼 현재는 의료현장에서 비급여로 수가가 청구되고 있으며, 오는 2027년 2월28일까지 비급여가 연장될 예정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AI 진료지원 시스템을 넘어 AI 의사를 만드는 것. 이것이 결국 환자를 위한 길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제 꿈은 AI 의사를 만드는 것이지만, 시장의 흐름을 깨면서 극단적으로 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지금 AI는 진단이나 치료가 아니라 진료를 지원하는 거예요. 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만큼 단계적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저는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의료 인공지능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산업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발자와 연구자, 소비자, 정부 등 산업 전반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함께 어우러지며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진들도 AI의 중요성을 내후년이면 인식할 겁니다. 어차피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트렌드가 아니에요. 저는 제 20년 의사 생활을 걸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유용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렇다고 저 혼자 발전하고 싶진 않습니다. 의료 인공지능이라는 생태계에서 업계 구성원 전체가 함께 성장하며 나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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