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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새로운 만성폐쇄성폐질환(이하 COPD) 치료 전략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 기존 치료제 국산화부터 삼중 복합제 도입, 나아가 세포외기질 단백질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혁신 신약개발까지, 새로운 돌파구를 향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COPD는 여전히 치명적이다. WHO는 2021년 COPD를 전 세계 사망 원인 4위로 집계했다. 국내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40세 이상 성인의 COPD 유병률은 2009년 9.2%에서 2018년 16.7%로 크게 뛰었다. 고령화와 흡연, 대기오염 등 복합 요인이 겹치며 환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표준 치료는 지속성 항콜린제 ‘LAMA’와 지속성 베타 2 촉진제 ‘LABA’ 병용 또는 흡입 스테로이드 ‘ICS’를 더한 삼제 요법이다. 증상 완화와 급성 악화 억제에는 효과가 입증돼 있다. 그러나 질환 진행 자체를 멈추거나 폐 기능을 회복시키는 근본적 질환 치료제(Disease Modifying Therapy)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글로벌 빅파마들도 이 벽을 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인터루킨 억제제 등 생물학제제를 COPD에 적용했지만, 대부분 임상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2024년 9월 미국 FDA가 ‘듀피젠트(Dupilumab)’를 호산구성·Type 2 염증 COPD 환자군에서 승인했다. 최초의 생물학제제 승인 사례다.
글로벌 규제기관이 COPD 질환 극복에 힘을 실으면서, 국내 기업들도 질환 극복과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COPD 치료제·흡입기 국산화 도전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다국적사가 독점해온 천식·COPD 흡입 치료제의 국산화에 나섰다. 회사는 2019년 건조분말흡입기(DPI) 타입의 ‘살메테롤’ ‘플루티카손’ 복합 흡입제 ‘세레테롤 액티베어’ 개발을 완료했다.
제품은 현재 식약처 품목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며, 올해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COPD 흡입제 시장은 국내에서만 수천억원대로 추산된다.
세레테롤 액티베어는 GSK의 ‘애드베어 디스커스(Advair diskus)’ 제네릭으로,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된 DPI 복합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개발 과정에서 초정밀 파우더 충전기와 무인 자동조립 시스템을 자체 구축해 흡입기 디바이스까지 국산화했다. 2018년에는 전용 스마트공장을 완공, 대량생산 체제도 미리 갖췄다. 이를 통해 로열티 부담 없이 생산할 수 있어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국산화에 성공할 경우,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국내 제약사 최초로 흡입기 디바이스 국산화라는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회사는 국내 시장을 넘어 미국, 일본, 유럽 등 해외 수출까지 적극 추진하고 있다.
코오롱제약, 글로벌 삼중 흡입제 도입…환자 치료 편익 향상
코오롱제약은 2019년 이탈리아 키에지(Chiesi) COPD 치료제 삼제 흡입 치료제 ‘트림보우(Trimbow)’를 국내에 도입했다. 이에 앞서 2015년에는 같은 회사의 ICS·LABA 복합제 ‘포스터(Foster)’를 국내 선보이며 호흡기 치료제 라인업을 넓혔다.
이 같은 치료제 연이은 도입으로 국내 환자들은 세계 최신 COPD 치료제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국내 치료 수준이 국제 표준과 나란히 올라서면서 환자 편익이 크게 높아졌다.
코오롱제약은 다국적사와의 파트너십 경험을 쌓으며 호흡기 분야 전문 마케팅 인프라를 구축했다. 향후 새로운 COPD 신약이 등장할 경우, 이를 가장 먼저 국내에 들여올 수 있는 유통 파트너로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트림보우는 ICS, LABA, LAMA 세 가지 약물을 하나의 흡입기에 담은 최초 제품이다. COPD 치료 중 가장 진보된 표준요법으로 평가받는다.
제형 역시 특징적이다. 입자 크기가 1μm대에 불과한 초미세(extra-fine) pMDI로 설계, 기존 흡입기로는 도달하기 어려웠던 말초 소기도까지 약물이 도달한다. 염증 개선과 빠른 기관지 확장을 유도해 실제 환자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하플사이언스, HAPLN1 기반 조직재생 신약으로 완치 도전
하플사이언스는 노화와 조직 퇴행에 주목해 COPD의 근본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고령화로 환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퇴행 억제와 조직 회복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회사가 주목한 표적은 세포외기질 단백질 ‘HAPLN1’이다. 이 단백질은 나이가 들수록 감소해 조직 기능 저하에 관여하는 인자로 알려져 있다. 하플사이언스는 이를 기반으로 COPD 치료제 ‘HS-401’을 개발 중이다.
HS-401은 흡입 투여를 통해 폐로 직접 전달된다. 손상된 폐조직의 세포외기질 구성을 강화하고 노화세포의 정상화를 유도해 폐 조직을 복원한다. 동시에 만성 염증을 억제해, 염증으로 무너진 폐포와 기관지 조직을 재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증상 관리 차원을 넘어, COPD를 근원적으로 치료하려는 시도다.
현재 HS-401은 비임상 연구를 완료하고 임상 1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임상 자금 확보를 위해 SK플라즈마와 공동연구 계약도 체결했다. 첫 임상은 호주에서 시작될 예정이며, 이후 국내 임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엔지켐생명과학, 경구 면역조절제로 염증폭풍 억제 전략
엔지켐생명과학은 면역조절 플랫폼을 기반으로 COPD를 비롯한 염증성 질환 치료에 도전하고 있다. 회사의 핵심 물질은 ‘EC-18(PLAG)’다. 면역세포 과도 활성에 따라 분비되는 주요 염증성 사이토카인(IL-4, IL-6, IL-8 등)의 과발현을 선택적으로 억제해 ‘염증폭풍(Cytokine storm)’을 차단하는 기전을 가진다.
EC-18은 구조적으로 안정적이고 독성이 낮다. 따라서 급성 염증 치료제뿐 아니라 지속형 면역조절제로 개발할 수 있다. 기존 흡입 스테로이드제나 전신 면역억제제와 비교했을 때, 부작용 부담은 줄이고 선택적 작용성을 높였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COPD 악화 동물모델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확인됐다. EC-18은 폐 기능 개선, 염증 및 섬유화 억제 효과를 보였으며, 이를 토대로 관련 특허 출원까지 완료했다.
또한 이 물질은 미국 FDA로부터 COVID-19 급성호흡곤란증후군(ARDS) 예방 목적의 임상 2상을 승인받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폐렴 환자를 대상으로 ARDS 진행 억제 임상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호중구 폐 침윤 억제와 사이토카인 폭풍 완화를 통해 폐 손상을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이 근거를 바탕으로 COPD 적응증 확대를 검토 중이다. 향후 글로벌 제약사와의 라이선스 아웃도 추진할 계획이다.
에이치이엠파마,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장-폐 축’ 공략
에이치이엠파마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COPD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회사는 장내 미생물이 폐 염증 반응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장-폐 축(gut-lung axis)’ 개념에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특정 유익균을 활용한 생균제제(Probiotic therapy)로 만성 염증을 완화하고 폐 기능 악화를 늦추겠다는 전략이다.
2023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차세대 치료 원천기술 개발’ 과제에 선정돼 정부 지원을 확보했다. 현재 전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며, 초기 동물모델에서는 장내 균총 변화를 유도해 폐 조직 염증 반응이 줄어드는 결과를 확인했다.
아직은 기초 연구 단계지만,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전임상과 임상 개발을 속도감 있게 이어간다는 게 회사 전략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의 높은 안전성과 장기간 복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주목받는다. 높은 안전성이 향후 보조 치료제 및 예방적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COPD는 고령화 시대에 가장 빠르게 늘어날 만성질환 중 하나”라며 “향후 수십 년간 국내 및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핵심 치료 영역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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