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사란 직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생소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한약사는 당신의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한약사는 1993년 한약파동이후 의사-약사처럼 한의사의 한방의약분업 파트너로써 그 역할을 수행하기위해 탄생한 직종이다. 약사법 2조에도 “한약사”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업무를 담당하는 자라고 그 역할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약사는 어디에 있을까? 의사는 의원, 치과의사는 치과의원, 한의사는 한의원, 약사는 약국, 한약사는? 당연히 한약국에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약국과 한약국을 분리하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약국개설자’라는 이름으로 두 직종을 묶어 놓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약을 사러 가는 그 ‘약국’에 있다는 얘기다.
“아 그렇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동네 내과에 방문했다 치자. 진료를 보고 내시경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 받았는데 알고보니 내과의사가 아니라 치과의사 였던 것이다. 그 약을 먹고 나았다 할지라도 황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의사와 치과의사는 의료법에 따라 개설범위가 명시되어있기 때문에 이런일이 실제로 벌어질 일은 없다. 그렇지만 약국에서는 실제 이런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 품절사태로 전국을 시끌시끌하게 했던 해열 진통제 타이레놀의 약 설명서 (인서트지)를 한 번 살펴보자. 없다면 당신의 집에 있는 다른 의약품의 인서트를 펼쳐봐도 좋다. ‘다음과 같을 경우 이 약의 복용을 즉각 중지하고 의사, 치과의사, 약사와 상의할 것.’ 당연한 문구이다. 한약사는 면허범위에서 규정하는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전문가일 뿐, 그 외 의약품에 대해서는 일반인이다. 면허범위 외 의약품들에 대해서는 상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당연히 책임을 질 수도 없다. 약사와 한약사는 교육과정도 다르고 약사는 6년제, 한약사는 4년제로 기본 학제도 다르다. 한약과 한약제제가 아닌 의약품을 한약사가 다루는 것은 마치 2종 자동변속기 면허를 가지고 대형버스를 모는 것과 같다. 즉, 무면허 운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사는 약국을, 한약사는 한약국을 개설하도록 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경기도약사회가 한국갤럽을 통해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7.8%는 이 생각에 동의한다. 실제로 2017년 당시 자유한국당 김순례의원이 ‘약국개설자는 소비자가 약사 또는 한약사의 면허 범위를 혼동할 우려가 없도록 약국의 명칭을 표시해야 한다’는 약국-한약국 명칭분리 법안을 내 놓은적이 있다. 한약사회는 당연히 기를 쓰고 반대했고 국민의 건강권을 수호해야 할 보건복지부 마저도 약사 명찰과 약사 면허증으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신중의견을 제출하며 법안은 무산되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앞으로 약국을 방문 할 때마다 크디큰 약국 간판을 확인하는 대신 가운에 걸쳐진(혹은 숨겨진) 작디작은 약사 명찰 확인을 위해 눈을 찌뿌리게 되었다.
오늘도 전국적으로 700여개가 넘는 약국에서 한약사들이 대형버스의 엑셀을 밟고 위험천만한 운행을 하고있다.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꼭 눈을 부릅뜨고 사고를 피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