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사다리 걷어차기 vs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길 잃은 약가제도 개편
학계 "가격만 깎는다고 재정 절감 안 돼… 시장 경쟁 기전 만들어야"
제약업계 "제네릭 수익 없인 신약 개발 불가능… 산업 기반 붕괴될 것"
정부 "재정 절감 아닌 구조 개편이 목표… 필수약 공급 등 보완책 마련"
김홍식 기자 kimhs423@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1-26 14:28   수정 2026.01.26 15:28
26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편, 이대로 좋은가?'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안'을 두고 제약업계와 학계, 환자단체가 한자리에 모였으나, 정부와 산업계 간의 인식 차이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26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는 백종헌·안상훈·한지아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주관한 '약가제도 개편, 이대로 좋은가?'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정부의 급격한 약가 인하 드라이브에 대한 산업계의 성토장을 방불케 했으며, 학계와 시민사회 역시 정부안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산업계 “제네릭은 신약 개발의 '캐시카우'… 싹 자르면 안 돼”

이날 토론의 핵심 쟁점은 '제네릭(복제약) 약가 인하가 신약 개발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었다. 제약업계 대표들은 "제네릭 수익이 곧 R&D 재원"이라며 정부의 '제네릭 쥐어짜기'가 결국 ‘K-신약’ 싹을 자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재춘 대웅제약 부회장은 "국내 제약사 영업이익률이 5% 남짓인데 20~25% 약가 인하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며 "글로벌 임상 3상 비용을 감당할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제네릭 수익마저 줄이면 신약 개발은 요원해진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는 "정부는 해외 약가와 단순 비교하지만, 해외는 대부분 저가 원료를 쓰는 수입산이고 우리는 고품질의 자국 생산"이라며 통계의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특히 매출 상위 기업이 약가 인하의 타깃이 되는데, 이들은 R&D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곳"이라며 "혁신을 하려는 기업이 오히려 역차별받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중소제약사를 대변한 조용준 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은 고용 위기를 거론했다. 그는 "약가 인하 시 제약업계 전체 영업이익이 50% 급락하고, 1만 5천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며 "중소제약사는 바이오 벤처의 자금줄(SI) 역할을 하는데, 이 고리가 끊기면 바이오 생태계 전체가 마비된다"고 우려했다.

학계 “가격(Price) 내려도 사용량(Volume) 늘어… 재정 절감 효과 의문”

학계에서는 정부의 '가격 통제 위주' 정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권혜영 목원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는 "비용(Cost)은 가격(Price)과 사용량(Volume)의 곱인데, 우리나라는 가격을 깎아도 사용량이 늘어 전체 약품비는 줄지 않는 구조"라며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때도 재정 절감 효과는 일시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40%, 50% 숫자를 정할 게 아니라,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일어나도록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켜야 한다"며 "저가 약을 쓸수록 인센티브를 주는 등 'The Lower, The More(쌀수록 많이 쓰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해외 약가 참조(재평가) 방식에 대해서도 "단순 비교는 후진국형 방식"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환자단체 “환자는 '신약' 원해… R&D 안 하는 제약사는 옥석 가려야”

환자단체는 산업계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제약사들의 'R&D 진정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는 "환자 입장에서는 이미 싼 제네릭 가격을 더 깎는 것보다, 생명과 직결된 신약의 급여 등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네릭 고가 유지가 신약 개발의 밑거름이 된다면 찬성하지만, R&D 투자 없이 제네릭만 찍어내는 회사들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다"며 "연구개발비를 쓰지 않는 회사는 시장에서 퇴출되는 구조조정도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복지부 “재정 절감 아닌 '구조 개편'… 필수약 공급 등 보완할 것”

쏟아지는 우려에 대해 정부는 '약가 인하'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김연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이번 개편은 단순한 재정 절감이 아니라, 제네릭 중심 생태계를 혁신 생태계로 전환하기 위한 구조적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성분에 100개가 넘는 품목이 난립하는 구조는 개선이 필요하다"며 개편 당위성을 설파했다.

다만 김 과장은 "산업계의 우려를 반영해 필수 의약품이나 공급 안정이 필요한 약제는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원가 보전을 강화할 것"이라며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약가 우대 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 이상으로 늘리는 등 '당근책'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 등은 전문가들과 협의해 예측 가능한 주기로 시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정부와 산업계가 바라보는 '골든타임'의 의미가 다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정부는 "지금 바꾸지 않으면 건강보험과 산업 구조가 무너진다"고 보는 반면, 업계는 "지금 깎으면 이제 막 피어나는 글로벌 진출의 싹이 잘린다"고 맞섰다.

백종헌, 안상훈, 한지아 의원 등 야당 의원들도 "산업의 현실을 고려한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나선 만큼, 향후 정부가 확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의 의견을 얼마나 수용할지, 혹은 원안대로 강행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토론회 전경.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윤재춘 대웅제약 부회장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김영주 종근당 대표이사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조용준 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권혜영 목원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김연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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