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로 시작해 유통도 다지는 레페리, '품평회'로 기준 만든다
데이터 기반 제품·평가자로 또 다른 데이터 축적…비즈니스로 연결
박수연 기자 waterkite@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7-04 06:00   수정 2025.07.04 06:01

콘텐츠 기반의 유통 실험이 화장품 시장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레페리 소속 뷰티 크리에이터 ‘레오제이’를 중심으로 한 ‘셀렉트스토어(Select Store)’가 업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 이면에 있는 구조와 기획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콘텐츠 신뢰를 전제로 한 브랜드 협업 모델이 어떻게 설계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레페리의 '품평회' 현장을 찾았다.

▲ 품평회를 준비 중인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2 34층 레페리 본사 슈퍼노바홀 모습. ⓒ뷰티누리ㅁ

'품평회'로 기준 만든다

레페리의 내부 품평회는 브랜드 비즈니스, 크리에이터 사업을 전개하기 이전에 '수준 높은 기준'과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된 레페리의 장기 프로젝트다.

6월 말,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2 34층 레페리 본사 슈퍼노바홀에서 열린 10회차 품평회엔 20~30대 뷰티 고관여층 여성들이 평가자로 참여했다. 레페리의 데이터랩 '뷰티 빅데이터 연구소'를 통해 이번 품평회 대상인 제품군에 관심이 많고, 구매를 할 가능성인 높은 소비층 중 30명을 선별했다. 내부 테스트인 만큼 참가자 모두가 레페리 소속 직원이거나 관계사 직원들이다.

품평회에선 제품과 참가자 모두 A, B 그룹으로 나뉘어 각 그룹당 15개씩 맡아 평가를 진행한다. A그룹은 유튜브나 SNS 상에서 최근 노출량이 급증한 '신규 발굴 제품(Newness)' 위주, B그룹은 레페리 측과 협의 중이거나 시즌성 또는 출시 직전 테스트 목적의 '비즈니스 제품'들을 맡는다. 6월 품평회의 경우, 모든 참가자들이 뷰티 고관여자인 만큼, 진지하게 토론을 나누며 테스트를 진행하는 분위기였다.

테스트 대상인 30개의 제품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부터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브랜드,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등 제품이 다양했고, 가격대도 5000원대부터 4만원 이상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6월 품평회엔 스킨케어 및 메이크업 제품이 가장 많았지만 '향'을 강조하는 헤어케어 제품들도 보였다.

레페리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은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화장품이 가장 많긴 하지만, 최근엔 품평 카테고리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번 품평회엔 네일케어 제품이나 뷰티 디바이스, 향수 등 더 다양한 제품이 테이블에 올랐다"고 귀띔했다.

▲A그룹의 평가자들이 제품을 테스트하고 평가지를 작성하고 있다. ⓒ뷰티누리


제품력부터 브랜드 잠재력까지 본다

레페리는 품평회를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격, 패키지, 포장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함께 표기하거나 전시함으로써 진짜 소비자 시선에서 제품을 평가하도록 했다.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QR 코드까지 붙여 놨다. 단순히 화장품의 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 차별성, 잠재력 등을 함께 평가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화장품을 좋아하고, 새로 나온 제품은 사서 써보는 '뷰덕'이라고 소개한 30대 초반 여성 참가자는 "품평회엔 처음 참석했는데, 이렇게 세세하게 평가해야 할 줄은 몰랐다"면서 빽빽하게 작성한 평가지를 보여줬다.

평가지는 항목이 꽤 세분화돼 있다. 단순히 좋다/나쁘다를 묻는 게 아니라, 제형, 발림성, 향, 가격 대비 만족도, 브랜드 차별성 같은 기준에 1~5점의 점수를 매기고 코멘트를 적도록 한다.

특히 눈에 띈 항목은 브랜드의 차별화된 세일즈 포인트나 트렌디함을 묻는 잠재력 항목이다. 상향평준화된 K-화장품 중에서 눈에 띄려면 특별함이 있어야 하기에 이 부분에 집중한 것.

▲ 6월 품평회의 평가지. 제품 1개당 15개의 문항이 주어진다. ⓒ뷰티누리

6월 품평회에서 반응이 좋았던 제품 중 하나는 ㄱ사의 쿠션으로, 한 참가자는 "일반적으로 매트한 쿠션은 조금 두껍게 피부에 올라가거나 투명한 표현이 어렵게 마련인데, 이 쿠션은 여름에 바를 수 있을 정도로 보송하면서 얇고 투명하게 표현할 수 있고 커버력도 좋다"고 평가했다.

또 좋은 평가를 받은 제품은 ㄴ사의 토너패드다. 수분감이 가득하면서도 끈적거리지 않고, 패드의 밀착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에서 사용감과 편의성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레페리 관계자는 "이번 품평회는 1차 품평으로, 여기서 점수를 높게 받은 제품들에 한해 추가로 '장기 품평'을 진행한다. 장기 품평 제품에 높은 점수를 준 평가자들이 2주 동안 제품을 계속 사용한 후 이 결과를 바탕으로 종합 평가서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 평가서는 브랜드에 전달하기도 하는데, 브랜드 측에선 뷰티 고관여자층에게 받는 장기 피드백을 무척 궁금해하고, 결과를 마케팅 등 실무에 참고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 한 참가자가 평가 대상인 쿠션 패드 제품을 테스트해보고 있다. ⓒ뷰티누리


뷰티테일(Beauty+Retail) 기업이 보는 '빅데이터'의 의미

레페리는 품평회를 단순한 체험 이벤트나 브랜드 마케팅 지원의 일환으로 보지 않는다. 관계자는 "우리가 제공할 콘텐츠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으려면, 실제 소비자 반응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결국 이건 크리에이터 콘텐츠의 기반을 다지고 브랜드와의 협업에도 신뢰를 부여하는 사전 검증 단계"라고 말했다.

실제로 레페리는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중심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B2C 사업을 전개하면서도, 브랜드와 협업해 콘텐츠를 만들고 제조부터 유통까지 기회를 설계하는 B2B 영역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품평회는 양쪽을 연결하는 핵심 지점으로 작용한다.

제품 선별의 핵심 지표로 활용되는 것이 'BBPI(Beauty Brand Power Index)'다. BBPI는 레페리 내부의 ‘뷰티 빅데이터 연구소’에서 개발한 데이터로, 유튜브·인스타그램·블로그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자연 발생한 리뷰 콘텐츠의 게시 빈도, 소비자 반응, 콘텐츠 도달 범위 등을 계량화해 순위를 매긴다. 쉽게 말해, 소비자들이 이미 자발적으로 반응을 보인 제품군을 레페리의 방식으로 다시 검증해보는 것이다.

관계자는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을 발굴하기 위해 내부 소셜 모니터링팀이 실시간으로 콘텐츠 흐름과 브랜드 포지셔닝을 분석하고, 그중 레페리가 의미 있다고 판단한 브랜드나 제품도 발굴한다"면서 "이를 브랜드 역제안 영업 및 크리에이터 추천에 활용하고, 비즈니스 집행 제품 선정에 있어 선정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품 하나가 성공하려면 결국 실사용자 입장에서의 만족도, 콘텐츠 노출 방식, 소비자 피드백이 종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브랜드가 미처 보지 못하는 빈틈을 이런 고관여자의 피드백으로 보완하는 게 이 작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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