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로벌 제약기업 머크(Merck & Co., MSD)의 혁신적 R&D 경영 전략과 과학 기반 리더십을 이끈 전 CEO 로이 바젤로스(P. Roy Vagelos)의 자서전 ‘메디신, 사이언스 그리고 머크 - 로이 바젤로스의 가장 미국적인 신약개발 이야기(원제: Medicine, Science, and Merck)’가 국내에 출간됐다.
이 책은 경영자의 회고록을 넘어, 과학과 경영이 어떻게 융합될 수 있는지, 또 신약개발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특히 바젤로스가 머크를 R&D 중심 기업으로 전환하며 정립한 전략과 철학은 오늘날 AI 기반 약물 설계와 신규 모달리티 중심의 바이오 혁신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리더십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 없는 제약은 없다” 의사이자 생화학자, CEO가 되다
로이 바젤로스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화학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NIH(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콜레스테롤 생합성 연구로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이후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과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1970년대 머크 연구소 소장으로 전격 영입된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A급 과학자가 산업계로 이동한 사례였고, 이는 머크가 ‘과학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분기점이 됐다.
1985년 머크의 CEO가 된 바젤로스는 단기 수익 중심의 제약 비즈니스 구조를 R&D 중심 체제로 전환했다. 취임 당시 35억 달러였던 연매출은 1994년 퇴임 시점까지 105억 달러로 세 배 증가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단 하나, 과학의 힘이 기업을 키운다는 믿음이었다.
바젤로스 시절 머크는 스타틴 계열 고지혈증 치료제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는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블록버스터 계열로 자리 잡았다. 기존에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데 담즙산 합성 억제 등이 주된 방식이었지만, 스타틴은 콜레스테롤 생합성 자체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으로 접근해 치료 패러다임을 뒤바꿨다.
그 결과, 머크는 전례 없는 속도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며 R&D 주도 성장 전략의 실효성을 입증했다. 현재 머크의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 또한 이때 정립된 과학적 의사결정 구조와 임상 기반 투자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2024년 기준 키트루다는 전 세계 의약품 매출 1위(약 290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익만을 위한 제약회사가 아니다…맥티잔 프로젝트 ‘지속 가능한 혁신’
바젤로스는 과학자이자 경영자로서 공공보건에 대한 책임 역시 실천에 옮겼다. 대표 사례가 아프리카 지역의 강변실명증 퇴치를 위한 ‘맥티잔(Mectizan) 프로젝트’다.
머크는 원래 가축용 항기생충제로 개발한 이버멕틴이 인체에도 안전하고 효과적임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강변실명증 치료제 ‘맥티잔’을 개발했다. 저소득 국가들의 보건 예산 부족으로 배포가 어려워지자, 당시 연구소장이던 바젤로스는 CEO로 취임한 뒤인 1987년, 해당 약물을 전 세계 감염지역에 무상 공급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그는 CEO 재직 시절부터 여성, 유색인종 인재 등 다양성 확보 정책, 환경 규제보다 엄격한 사내 기준 도입, 중국에 대한 백신 기술 수출 등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선제적으로 실천해왔다. 책은 이 같은 결정이 ‘마케팅이 아닌 과학자의 윤리적 판단’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한다.
2024년 머크는 전 세계 매출 650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 ‘포춘 500’에 70년 연속 진입한 49개 기업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포브스’가 20년간 명단에서 빠지지 않은 글로벌 기업에 부여한 ‘글로벌 2000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장기 안정성과 글로벌 경쟁력은 ‘과학의 우선순위를 잃지 않는 기업 문화’에 바젤로스가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책은 바젤로스가 머크 CEO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과학자로 돌아가, 항체치료제 개발로 유명한 리제네론(Regeneron)을 비롯한 바이오텍 이사회 활동에 참여한 이력까지 소개한다. 그는 “CEO는 떠났지만, 신약개발은 계속돼야 한다”며, 새로운 형태의 윤리적 자본주의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주장해 왔다.
‘메디신, 사이언스 그리고 머크’는 한 명의 성공한 CEO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 기업이 과학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지속 가능한 R&D 전략이 어떤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좋은 의도’가 결국 산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01 | 동구바이오제약 '리나탑듀오정' 영업자 회수... |
02 | 폐플라스틱,진통제 타이레놀 주성분 '아세트... |
03 | 미샤, 일본서 ‘글로우’ 시리즈 출시… 매직쿠... |
04 | 씨앤씨인터내셔널, 중국서 '승승장구'…최대... |
05 | 셀트리온홀딩스,1조 재원 확보..지주사 사업... |
06 | 신테카바이오,‘10대 타깃 중심’ 전략 전환..... |
07 | 강스템바이오텍,'피부 오가노이드 아토피 모... |
08 | 티앤알바이오팹,이연제약 공동개발 ‘매트릭... |
09 | 메디포스트, 카티스템과 고위 경골 절골술 ... |
10 | 고가의 희귀질환 치료제 ‘웰리렉’, 급여 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