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음악 '코레아의 신부'가 드디어 공개되다
 
124년만에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낸 발레 '코레아의 신부'의 음악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유려한 후기낭만 사운드, 빈 왈츠의 정수 그리고 한국적인 정서, 이 모든 요소들을 담고있었다.

영광스럽게도 악보가 발굴된 이후 지난 9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과 함께 처음으로 연주를 맡게 되었는데 첫 리허설때 작품을 귀로 처음 접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비엔나 풍이면서도 동양적인 색채를 지녔고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 같다는 평과 함께. 

고착화된 클래식 레퍼토리에 단비같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부풀어오르는 순간이었다. 

4막9장으로 이루어져있는 이 발레극은 조선왕자와 부하의  딸 사이에 펼쳐지는 러브스토리로 내용은 이렇다.

청일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조선의 왕자는 나라를 구하기위해 직접 전장에 뛰어들기로 결심하는데 전장으로 떠나기 전 한 부하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이름은 '대사'. 헤어졌던 그들은 결국 전쟁의 풍파속 제물포항에서 왕자와 재회하고 즉석에서 결혼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전투끝에 일본이 승리하고 왕자는 전쟁포로의 신분으로  일본 장군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결국 신부 '대사'는 각고의 노력끝에 사랑의 신들의 도움을 받아 꾀를내어 일본 장군을 쓰러뜨리고 둘은 마침내 서울에서 다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발레 '코레아의 신부'에서 여주인공역을 맡았던 Irene Sironi

이 작품은 1897년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5년간 무대에 오르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까다로운 빈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오페라 포함, 그 시즌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기까지했던 작품이다.

잊혀졌던 이 작품의 악보가 2012 다시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을때부터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무척 애착을 갖고 있었지만 한국을 소재삼았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을 성역화 시킬 수  없을 터. 이 작품이 알려졌을때부터 우려의 시선도 존재했다. 

<춘향전>을 토대로  만들어진 <사랑의 시련>이란 단막 발레를 70년만에 국립발레단이 재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는데 작품에 드러난 동양에 대한 얕은 지식과 왜곡된 시선이 큰 몫 했을 터. 결국 서구문화가 중심이고 동양문화는 이국취미 정도로 다뤄지며 그 내면에 문화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있음이 확연했던 것이다. 

코레아의 신부의 경우 한 여자가 왕자를 구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어 각고의 노력끝에 일본장교를 쓰러뜨리고 왕자를 구한다는 설정은 한국인의 정서애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 또한 타자화된 서구인의 시선을 비롯해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불편한 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왕자를 구하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은 Daisha(대사)로 서구인의 일본 편향적인 시선으로 간주할 수 있다. 또한 대사와 재회한 왕자가 즉석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한국에서는 결혼한 남자만이 전쟁에 출전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관습이 등장한다. 어이없게도 남자들이 전쟁에 출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체로 해녀들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장면이 있다.

   발레 '코레아의 신부' 리허설장면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

지휘자 총보에 보면 전쟁에 출전하기 전 왕자가 아편굴에서 미래를 점치는 장면에  "미신을 섬기는 다른 모든 한국인처럼 왕자는 아편굴에서 미래를 점친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는데 중국을 휩쓸었던 아편의 영향권에 한국을 함께 포함시킨 오류가 명백하다. 

당시 오리엔탈리즘이 만연했던 시대적 정황을 고려했을때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아시아에대한 진지한 접근과 고찰이 아닌 겉핧기식 자의적 해석이 엿보여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한국은 중국과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미지의 나라였으며 청일전쟁에 나라의 운명을 내맡겨야했던 힘없는 나라였던 것이다.

이 작품에 드러난 동양에 대한 편견과 일본과 중국이 뒤섞여버린 설정을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현재 드높은 대한민국의 위상과 달리  약소국이었던 당시 역사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되 예술은 예술자체로 인정받을 필요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인의 왜곡된 시선과 오류들과는 별개로 작곡가 요셉 바이어(Joseph Bayer)의 탁월한 음악적 예술성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바이어는 빈 왈츠의 아이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절친이자 미완으로 남아었던 발레 '신데렐라'를 완성한 인물인만큼 124년만에 최초로 공개된 그의 발레음악을 연주해본 결과 발레의 주를 이루는 왈츠들은 뻔하지 않으면서도 빈의 기상이 서려있으며 멜로디가 유려했다. 

흥미롭게도 2막 4장에는 '제물포항'을 묘사한 음악이 등장하는데 전쟁통의 어수선함속에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클래식한 음악과 옛날 트로트 감성의 멜로디, 온음계 동양적 선율이 잘 녹아있는 음악으로 독립적인 음악으로도써도 꽤 매력적이었다. 1897년 발레 초연이후 빈의 일간지 다스 파터란트(Das Vaterland)는  "빈 스타일과 한국 스타일 사이를 우아하게 오간다"는 공연평을 내놓았는데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악보는 발견되었지만 아쉽게도 안무에 대한 자료가 미비하고 대부분 창작에 의존해야하기 때문에 발레를 무대에 올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 하다. 하루 빨리 발레와 음악이 함께 만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

1897년 초연이후  빈 일간지 너이에스 비너 쥬르날(Neues Wiener Journal)에 실린 기사내용이다. "요제프 바이어의 예술가적 감각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빈 왈츠가 한반도에서도 통할 만하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클래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잡기 바라며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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