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거 이제 아주 지겨워.” ‘정원’(한석규)의 사진관에 앉아 ‘다림’(심은하)은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거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주차단속요원 일의 고단함이 묻어난 말이다. 정원과 그의 사진관은 사회초년생의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다림에게 유일한 쉼터와도 같다. 정원이 위로의 의미로 선풍기를 틀어주자 다림이 일어나서 정원을 등지고 말한다. “아저씨, 생일이 8월이죠? 사자자리 아니에요? 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다고 하던데.” 

설렘이 있는 8월, 생일이 있는 8월, 크리스마스가 있는 8월이 그 어느 해보다 간절한 요즘이다. 허진호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1997) 한 편으로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를 대사와 눈물 대신 이미지와 음악으로 풀어낸 세련된 화법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즉, 이전까지의 한국 멜로드라마가 감정의 과잉과 표출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 영화는 폭발하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는데 미덕이 있는 작품이었다. 

음악을 맡은 조성우 감독에게도 이 작품은 꽤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악기를 가능한 줄이고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두 사람의 교감을 충분히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의 엔딩 직전 약 17분간은 대사가 전혀 없는 영상이 이어지는데 섬세한 사운드 디자인을 바탕으로 적확한 타이밍의 소스 음악, 스코어 음악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학창시절부터 친구였던 허진호 감독과 조성우 감독의 호흡은 이후, <봄날은 간다>(2001), <덕혜옹주>(2016),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8) 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철학박사로 모교의 조교수까지 역임한 적이 있던 그의 커리어 때문일까. 그의 음악은 짙고 깊다.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에 대한 몰입도가 강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들이다 그가 만들어낸 선율들은 머릿속에 오래 머물다가 아주 천천히 사라진다. 향을 음미하게 되는 고급 커피나 고급 위스키처럼, 그 음악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형태를 바꾸어 나가며 다양한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봄날은 간다>, <형사>(2005), <만추>(2010)의 음악들이 그렇다. 

8월은 조성우 감독이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는 달이기도 하다. 작곡가로서 뿐 아니라 제작자로서, 영화제의 리더로서 한국영화계에 많은 공을 세워온 그에게도, 그가 정성껏 차려놓은 음악과 영화의 정찬을 즐기는 관객들에게도 크리스마스 같은 한 달이 되기를 바란다. 

윤성은의 Pick무비 /  우리가 생존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 <모가디슈>

기대를 많이 한 영화일수록 실망할 가능성도 크다. 관객들의 기대감이 적으면 초반 극장 유입이 어렵고, 실망을 많이 하면 금방 발길이 끊어진다. 과연 <모가디슈>(류승완, 2020)의 제작진은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길 바랐을까? 아무리 경험이 풍부한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라 해도 수십 편의 영화가 빛을 보지 못한 채 적체되어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오랜만에 개봉하는 한국 블록버스터라 그 하중은 여느 때보다 컸을 것이다. 다행히 초반 예매율과 관람평은 매우 좋은 편이다. 

사실, 20세기 말에 일어났던 소말리아 내전이 궁금해서 극장을 찾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모가디슈>의 제작이 가능했던 것은 철저히 그 당시 고립되어 있던 남한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이 어떻게 협력하여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는 기획에 있다. 탈출과 공조라는 대중영화 서사의 두 가지 핵심 키워드가 이 영화에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는 남북한이 불편한 동행을 하게 되는 본론으로 나아가는데 너무 힘을 많이 썼다는 느낌이 든다. 민중 시위, 정부군의 진압, 반군의 진격까지 기관총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도 속도감은 없다. 후반부 남북한 사람들이 탄 네 대의 차가 총알 세례를 뚫고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가는 길의 액션이야 필요한 것이었지만 전반부 소말리아의 정치적 상황은 보다 간결했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모가디슈>는 이 낯선 제목의 배후처럼 대중적 재미 외에 어떤 역사의식을 전달하고자 강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시 우리 외교관들이 처한 상황은 부정, 부패한 소말리아 독재 정부와 폭력적 반군 사이에서 희생양이 된 소말리아 민중들과 다를 바 없다.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거리에 ‘우리는 소말리아인들의 친구이자 협력자’라는 내용의 육성 테이프를 틀어놓는 장면의 아이러니는 매우 인상적이다. UN 가입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소말리아와의 외교가 허상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매사 정치적 공작을 한다며 툭탁거렸던 남북한 사람들이 남측 대사관에 모여 생존과 귀환만이 목표임을 확인하면서 날선 경계심을 풀어가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데올로기는 당면한 재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자 이들에게 하늘길이 열리고 각자의 조국으로 돌아갈 구멍이 생긴다. 

그럼에도 디테일은 다소 아쉽다. 현란한 총격신 보다는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젓가락으로 깻잎을 떼어주는 장면의 여운이 더 오래 남을 작품이기에, 그와 유사한 교감의 신들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남는다.  한편, 한국의 분단과 소말리아 내전은 현재진행형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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