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창단된 뉴욕 필하모닉(New York Philharmonic/이하 뉴욕필)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오케스트라이다. 그 역사에 걸맞게 치열하고 엄격한 경쟁을 통해 뽑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비올라 수석 한 명을 뽑기 위해 다섯 번의 공개 오디션을 진행할 정도로 깐깐하게 선정된 106명의 단원들을 한명 한명 꼼꼼히 관리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 칼 쉬블러
이곳에서 40여 년간 오케스트라의 퍼스널 매니저를 담당한 칼 쉬블러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그가 세인트 루이스 오케스트라에서 호른 연주자 겸 퍼스널 매니저의 역할을 하다 뉴욕 필하모닉으로 자리를 옮기며 정식 퍼스널 매니저가 되었다, 그가 2016년 타계하기 전까지 레너드 번스타인, 주빈 메타를 비롯한 5명의 음악감독과 함께 일했고, 수많은 전설적인 연주자와 함께 했다. 
 뉴욕필 공식 웹사이트는 그를 ‘guardian and mentor(보호자와 멘토)’라고  언급하고 있다. 퍼스널 매니저의 업무를 뛰어넘는 오케스트라의 정신적인 지지대와도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타계한 후, 뉴욕 필하모닉은 특별 헌정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퍼스널 매니저라는 직업은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퍼스널 매니저는 행정을 포함해 단원들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한다. 이 업무의 역할도 그가 더욱 체계화 시켰는데 크게 행정적인 일과 리허설 및 공연을 관리하는 두 종류로 나뉜다. 행정 업무는 단원 오디션, 엑스트라 섭외, 단원들의 월급 지급 등이 포함되고 리허설과 공연을 관리 업무에 방송 녹화, 투어, 정기 및 야외 공연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는 모든 업무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주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단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곧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늘 언급하곤 했다.

쉬블러는 가장 중요하지만 어려운 점은 모든 단원들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단원들 개개인은 오케스트라의 부분이자 동시에 뉴욕필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악장, 수석, 단원을 같은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악장과 평단원의 월급이 같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아프다거나, 가정에 문제가 있거나 하는 등 모든 일들이 생길 때 똑같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가 말하는 진정한 평등함에는 어떤 특정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공평함이야말로 모든 단원들과 직원들에게 그가 멘토로 자리잡은 근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를 나의 상사로 두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타지의 큰 오케스트라에서 일한다는 것에 주눅이 들곤 했던 나에게 그는 항상 ‘특별한 사람’이라고 용기를 주셨다. 지치고 힘들어 할 때는 음악감독들과 세계적인 음악가들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위로해주시기도 했다.  

사실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은 고단하기도 했다. 실수라도 할라치면 가차없이 “Use your brain!"이 날아왔기 때문에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열정적인 그의 업무 태도를 보며 본받고 싶었고 몸짓 하나, 생각 하나 닮고싶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칼과 함께한 10년이 내게 남긴 것은 일에 대한 열정과 의식적으로나마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려는 태도이다. 

여전히 힘든 일이 닥칠 때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리곤 한다. 그는 뚝심과 배짱, 그리고 정의를 가지고 사리 판단을 할 것이다. ‘공평함’이라는 토대를 가지고.

 나는 아이가 셋이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 내가 이 다음 세대들에게 늘 공평함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공평함’ 이 바로 멘토 쉬블러에게 배운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멘토의 정신은 후세가 살아갈 수 있는 뼈대를 만들어 준다. 이 뼈대를 이루는 정신은 대를 이어나가 후세의 사고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진정한 멘토들의 가르침을 받은 멘티들일수록 인생을 알차게, 신념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으며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기도 한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도 어른들이 형식적인 멘토가 아닌 진실한 멘토로서 삶의 청사진을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한 걸음 앞서 걸어가는 어른들의 의무가 아닐까.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