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지 마세요. 굴드 씨는 여기에 있으니까요.”

1962년 4월 6일 카네기홀,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에서는 굴드의 협연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연주 취소가 잦은 것으로 유명했던 굴드 없이, 홀로 무대에 등장한 번스타인은 청중들을 안심시키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발언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곧 연주될 브람스의 협주곡은 정통적이지 않은 연주가 될 것인 데, 내가 굴드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굴드의 음악관을 존중하므로 그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정통적이지 않은 연주’를 유발한 가장 큰 요인은 굴드의 너무 느린 템포였습니다. 이는 특히 1악장에서 두드러졌지요. 이 템포를 처음 접한 번스타인은 놀랐고, 굴드를 설득하려 했지만, 굴드는 계속해서 자신의 느린 템포를 고수했고, 번스타인도 결국 이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템포로 인해 번스타인은 굴드 없이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진행하였는데, 그는 이미 여러 번 연주했던 작품을 왜 솔리스트 없이 따로 연습해야 하는지 묻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설득해야만 했지요.

마침 라디오로 실황 중계되었던 이날의 연주는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는데, 심지어 굴드가 기량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리게 연주했으리라는 비난이 가해지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연주 이후 번스타인과 굴드의 사이도 멀어지게 되었고요. 이래저래 떠들썩했던 이 연주는 몇 가지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을 남겨놓았습니다.

                                   번스타인과 굴드 (Don Hunstein 사진, 1957, Sony Classical 제공)

첫째, 지휘자가 연주에 앞서 저런 발언을 하는 것이 옳은가?

연주에 앞서 지휘자가 발언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대부분 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 혹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 정도이지요. 번스타인의 발언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해석은 전적으로 솔리스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솔리스트의 독특한 해석에 대해 지휘자가 선을 그어버리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지휘자가 솔리스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요. 굴드의 평전을 쓴 피터 오스왈드와 당시 번스타인의 부지휘자로 현장에 있었던 오자와도 번스타인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사실, 발언 전체를 들어보면, 번스타인이 굴드라는 예술가와 그의 해석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그에 따르면, 굴드가 연주에 앞서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에 찬성했다고도 하고요. 번스타인은 선의로 이루어진 자신의 발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억울해 했지만, 그 빌미를 자신이 제공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둘째, 그 연주는 정말 그토록 느렸나?

물론 느렸습니다. 하지만, 번스타인이 연주에 앞서 청중들에게 미리 주의를 줄만큼 느렸을까요? 굴드와의 협연 이후 20여년이 흐른 1984년, 번스타인은 짐메르만과 같은 곡을 실황 녹음했는데, 총 연주 시간은 약 54분 정도였습니다. 굴드와의 협연이 53분 정도였으니, 비슷하죠. 1악장과 3악장의 경우에는 짐메르만의 연주가 약간 빨랐지만, 크게 차이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번스타인은 연주에 앞서 발언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했을까요? 일단, 1960년대에 굴드의 템포가 지금보다 더 낯설게 다가왔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데,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정기연주회는 3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번스타인의 발언이 있었던 날짜는 4월 6일이었는데, 하루 전인 5일에 공개 리허설 형태로 첫 공연이 있었고, 8일에 마지막 공연이 있었죠. 번스타인이 말년에 밝힌 바에 따르면, 첫 공연이었던 5일의 연주가 굴드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템포대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템포는 정말 느려서 연주가 거의 한 시간 반이 걸릴 지경이었다고 해요. 물론, 그가 말년에 회상한 것이어서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연주가 한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 첫 공연에서도 번스타인은 그 다음날(4월 6일)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극도로 느렸던 템포를 생각하면, 그가 왜 발언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첫 공연에 비하면, 그 다음날의 연주는 한결 빨라진 것이었죠.

셋째, “협주곡에 있어 누가 대장인가? 솔리스트인가? 아니면, 지휘자인가?”

이것은 번스타인이 그의 발언에서 직접 했던 말입니다 (“Who is the boss?”). 협주곡에 있어 음악적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이지요. 번스타인은 boss는 때로는 지휘자이고, 때로는 솔리스트인데, 이는 누가 연주에 참여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대답을 하며 그의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이에 대해 오자와는 대게는 그 곡을 더 오랜 기간 밀도있게 연습해왔을 솔리스트에게 음악적 주도권이 있겠지만, 지휘자의 권위가 솔리스트보다 훨씬 더 높을 경우에는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죠. 지극히 원론적인 결론이지만, 지휘자와 솔리스트의 조합에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므로, 정해진 하나의 답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지휘자와 솔리스트가 협주곡 연주를 함께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겠지요. 60여년 전 이루어진 번스타인과 굴드의 연주는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합니다.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지속되는 한, 이 연주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회자될 것입니다.

추천음반: 라디오로 중계된 번스타인의 발언과 뒤이어 연주된 브람스 협주곡 1번은 고스란히 음반으로 남아있습니다. 시작 부분의 오케스트라 총주 부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템포 설정이 인상적이지요. 어쩌면, 논란만큼 느리지는 않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개성 강한 이 연주에 대한 호불호는 나뉘겠지만, 이 음반이 소중한 기록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Hz2i6bhUXw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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