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은 베토벤 교향곡 연주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기록됩니다. 그의 교향곡 전곡이 처음으로 원전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Period performance) 방식으로 녹음되었기 때문이지요. 원전 연주를 간단히 말하면, 어떤 작품이 탄생되었을 당시의 연주 방식을 살려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당대의 악기 및 악기 편성, 그리고 연주 기법 등의 적용이 필요하지요. 

현대 악기로 이루어진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에 베토벤 당대의 악기와 연주 기법으로 무장한 원전 연주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연주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요. 원전 연주 단체의 베토벤 연주는 더욱 늘어났으며 현대 악기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도 편성의 크기나 템포 설정 등에 있어서 이들이 행했던 방식을 참고하고 도입하는 경우가 생겨났습니다.

원전 연주의 등장은 감상의 즐거움을 더할 뿐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베토벤은 어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자신의 작품을 공연하였을까? 당시 빈의 오케스트라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들이 생겨나지요.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실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까요?

우선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사실은 베토벤 당대에는 빈에 전문 콘서트 오케스트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프로 음악가로 구성된 콘서트 오케스트라가 없었다는 뜻인데 음악 애호가들이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몇 개 존재했습니다.

그렇다면 프로 음악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어떤 유형으로 존재했을까요? 베토벤이 활동했던 19세기 초반 빈에는 3가지 유형의 프로 오케스트라가 있었습니다. 1. 궁정에서의 의식을 담당했던 궁정 오케스트라 2. 극장 오케스트라 3. 귀족에 소속된 오케스트라. 이 중에서 베토벤의 활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극장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빈에는 궁정 극장을 비롯 몇 개의 극장과 그에 속한 오케스트라가 있었지요. 베토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최한 첫번째 음악회에서도, 그의 교향곡 5번과 6번이 동시에 초연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던 합창 교향곡의 초연 때에도 극장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였습니다.

                        지휘하는 베토벤 (Michel Katzaroff 작품, 출처: rnz.co.nz)

당시 오케스트라의 크기는 어땠을까요? 기록을 살펴보면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이 100여명 혹은 그 이상인 오늘날보다는 작은 규모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824년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담당했던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경우 1823년 등록된 인원이 총 43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극장 오케스트라들은 40명이 채 되지 않고요. 1810년의 롭코비츠 백작의 오케스트라는 조금 큰 앙상블 수준인 9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베토벤 당대의 공연에는 언제나 작은 크기의 오케스트라만이 연주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연주 공간 크기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크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장대한 규모의 영웅 교향곡도 롭코비츠 백작의 저택에서 연주될 때에는 전체 오케스트라가 30명대 초반이었지만 7번과 8번 교향곡이 대 무도회장에서 연주되었을 때에는 현악 파트만 69명이었던 경우도 있었지요. 

이렇듯 현악 파트가 매우 많아지게 되면 목관 파트를 두배로 늘리는 이른바 ‘더블링’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빈의 당시 오케스트라 규모가 작은 편이었기에 규모가 있는 공간에서의 관현악 연주회를 위해서는 한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부족한 인원을 매번 그때 그때 보충해서 연주할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방식을 취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음악회를 주최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수고스러운 일이었겠지요.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원래의 악단 규모보다 더 큰 규모의 공연을 해야 할 때 인원을 보충하는 방식인데요. 합창 교향곡 초연 당시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적어도 현악 파트의 경우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포함하여 보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연주의 수준이 아무래도 저하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수 있는데 당시 빈의 아마추어 연주자들에 대한 평가는 학자마다 엇갈립니다. 그들의 연주력이 좋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고 (클라이브 브라운), 반대로 이들의 연주력이 뛰어났다고 보는 견해도 볼 수 있습니다. (오토 비바, 하르트무트 크로네스)

베토벤이 사망한 지 15년이 지난 1842년, 빈의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 니콜라이(O. Nicolai, 1810-1849)의 지휘로 관현악 연주회를 갖게 됩니다. 빈에서 최초로 프로 음악가들로 구성된 콘서트 오케스트라, 바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연주했던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이었지요.

시간이 흐르며 오케스트라도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위대한 음악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계속 연주된다는 사실이겠지요. 어려운 이 시기에도 이 사실이 변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그동안 베토벤 탄생 250주년 칼럼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회부터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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