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성악곡 중에는 ‘태평가’라는 이름을 가진 노래가 두 개 있다. 가곡 태평가와 민요 태평가다. 전통 사회에서 가곡과 민요는 가락도 장단도 향유하는 사람도 각기 달랐지만 가사에 담긴 의미만큼은 일맥상통한다. 태평성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사태평하기를 바라는 마음.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행간에서, 우리네 삶을 어지럽히는 근심 걱정을 꾹꾹 눌러보려는 의지가 읽힌다.

가곡 태평가

가곡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우리 전통 성악의 한 장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지만, 가곡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 성악을 전공한 이들이 부르는 ‘비목’이나 ‘그리운 금강산’ 같은 곡을 먼저 떠올린다. 우리 가곡은 시에 곡을 붙인 서양의 가곡처럼, 시조에 가락을 붙여 부르는 노래다. 시조를 지은 이는 임금부터 선비, 중인 중심의 가객, 기녀들까지 다양했다. 

         가곡 태평가 공연 장면(출처: 국립국악원 국악아카이브)

그 시조에 가락을 붙인 노래인 가곡은 주로 율객(律客)이라 불린 전문가들에 의해 전승되었으며 주 향유층은 양반이었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단소, 대금, 장구 등의 악기로 반주하며, 시조 한 편을 5장으로 나누어서 부른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전주인 ‘대여음’이, 3장과 4장 사이에 간주인 ‘중여음’이 연주된다. 노랫말의 문학성뿐 아니라 완벽한 음악적 구성, 예술적 가치까지 두루 갖춘 음악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전승되어 불리는 가곡은 총 41곡인데 남자가 부르는 ‘남창’과 여자가 부르는 ‘여창’으로 나뉜다. 그중 가곡 태평가는 유일하게 남녀 가객이 함께 부르는 노래다. 

(이려도) 태평성대 / 저려도 성대로다
요지일월이요 순지건곤이로다 
우리도 / 태평성대니 놀고 놀려 하노라.

이러나 저러나 태평성대로구나
요순 시절의 해와 달이요, 하늘과 땅이로다
우리도 태평성대에 놀고 놀려 하노라

가곡 태평가의 가사는 달랑 세 문장이지만, 노래 한 곡을 다 부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8분 남짓이다. 태평가는 전주인 ‘대여음’이 없이 시작되고 첫 소절인 ‘이려도’는 거문고 연주로 대신한다. 실제 부르는 첫 구절은 ‘태평성대’인데, 이 네 음절을 노래하는 데 어림잡아 40초 정도 걸린다. ‘태’ 한 글자를 ‘타으~ 으으~’하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빨라서 알아듣기 어려운 곡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느려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가 가곡이다. 하지만 노랫말인 시조의 구절구절을 음미하고, 맑고 곱게 소리내는 음색을 따라가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가곡의 담박한 맛을 깨닫게 된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지만, 가곡을 노래하는 이들이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는 덕에 우리는 어쩌면 이 낯선 전통 음악과 이미 한 번쯤 조우한 적이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해어화를 통해 알려진 ‘사랑, 거즛말이’는 가곡 ‘계면조 평거’를 원곡으로 한다. 창작곡에 가깝지만, 노랫말과 창법 등은 원곡과 많이 닮아있다. 가곡 이수자인 강권순이 송홍섭 앙상블과 낸 음반이나 정가 여신이라 불리는 하윤주가 두번째달과 함께한 노래들도 현대의 청중에게 다가가고 있는 가곡의 일면을 보여준다. 유튜브에서는 경남 MBC가 제작하고 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 명인이 출연한 2부작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가곡이 무엇인지, 명인으로부터 한 수 배울 수 있는 영상이다.

민요 태평가

생활 전반에서 불리던 민요는 지역에 따라 경기 민요, 남도 민요, 동부 민요, 서도 민요, 제주 민요 등으로 나누는데 태평가는 경기 민요에 속한다. 경기 민요는 맑은 소리로 경쾌하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가곡에 비해 민요 태평가는 많이 알려진 노래다. 지코, 넬, 우쿨렐레피크닉 등이 각자의 버전으로 만들었던 광고 음악 ‘사는 게 니나노’의 원곡이 바로 ‘태평가’다. 

1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2
꽃을 찾는 벌 나비는 향기를 쫓아 날아들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 사이로 왕래한다.

(후렴구)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민요 태평가는 대구를 이루는 두 문장 정도의 가사를 노래한 후 ‘니나노~’하고 시작하는 후렴구를 붙여 부른다. 후렴구 앞에 부르는 사설은 매우 다양하다. 부르는 이가 새로 창작하거나 변형하며 노랫말을 확장해나가는 민요의 특징 덕분이다.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보면 부르는 사람에 따라 또는 공연이나 
음반에 따라 가사가 조금씩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이희문이나 송소희, 전영랑, 김용우 등 경기 민요 소리꾼들의 음반에는 태평가가 거의 다 들어있다. 이들의 음반을 찾아 듣다 보면 태평가뿐 아니라 흥겹고 세련된 경기 민요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태평가의 가사에 ‘태평’의 본질이 담겨있다. 1절에서는 ‘비 오면 미투리 안 팔리고 해 나면 나막신 안 팔리고, 비 와도 탈이고 안 와도 걱정’이라 노래하더니 2절에서는 ‘비 오면 나막신 잘 팔리고 해 나면 미투리 잘 팔리고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나 마음이 아주 턱 놓여서 태평’이라고 능청이다. 매사 천하태평의 경지에 다다를 마지막 열쇠는 결국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태평가는 노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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