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항간에는 ‘여성 비하’라 해석하기도 하고 오히려 치마가 길어지더라는 데이터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냥 표현 그대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유가 사라지게 마련이고 그래서 더 과감한 패션이 유행을 한다”고 풀어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공황이 미니스커트의 유행을 불러온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쉽게 판단할 순 없지만 확실히 문화산업에서는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회가 우울하고 돈벌이가 시원찮을수록 코미디나 이색 소재의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쉽게 목격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락거리가, 무대가, 영상 콘텐츠가 잠시 현실의 어려움을 잊고 삶의 힘을 되찾도록 배려하는 탓이다. 잠시의 판타지나 일탈이 일상의 피로를 지우거나 극복하게 만든다. 문화와 예술이 우리에게 사랑받는 이유이자 의미다.

코로나 19로 보통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진 게 벌써 반년째다. 하지만 수그러들지 모르는 감염병의 위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정치색을 띤 집회에 특정 교회 목사나 정치집단이 관여돼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태로까지 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겨우겨우 예전으로 복귀하던 우리나라 뮤지컬 공연가가 또 다른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새다. 민간 공연에서까지 ‘띄어 앉기’를 강제하겠다는 정부의 지침으로 아예 문을 닫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매출규모가 큰 뮤지컬계가 가장 엄살이 심하다고 핀잔하는 사람도 있다. 모르고 하는 말이다. 매출이 높을수록 피해가 더 클 수도 있고 절반의 관객으로는 배보다 배꼽이 큰 구조적 문제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클래식이든 상업예술이든 절반의 관객으로는 치명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무대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실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함의 효과는 더욱 강렬하고 격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면 힘들수록 문화와 예술이 주는 위로는 더욱 강력해진다.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닌, 그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힘을 느끼게 마련이다. 인류에게 문화와 예술이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 온 이유다.

요즘 우리나라 공연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야기 소재는 성소수자이다. 뮤지컬 분야에서는 특히 그렇다. 예를 들자면 새롭게 막을 연 영국 뮤지컬 ‘제이미’가 그렇다. 여장남자를 의미하는 드렉퀸이 되고 싶어했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군대를 다녀온 조권이나 신주협, MJ, 렌 등이 주연으로 등장하며 특유의 끼와 연기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2015년 토니상 12개 후보에 올라 최우수 뮤지컬상을 포함 주요부분 5개상을 석권했던 미국 뮤지컬 ‘펀 홈’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엘리슨 벡델이 43살이 되어 게이였던 아버지를 회고하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원작이다. 실력파 뮤지컬 배우인 방진의가 최유하, 유주혜, 이지수 등과 함께 43살의 앨리슨 역할로 무대에 등장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뿐만 아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 ‘킹키 부츠’도 2020년 앙코르 무대를 준비 중이다. 영국 시골마을 남성화 신발공장이 니치 마켓인 여장남성을 위한 튼튼하면서도 섹시한 롱부츠를 만들게 된다는 내용이다. 역시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데,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로 영국 BBC에서 소개됐던 내용을 코믹영화로 만들고 다시 무대용 뮤지컬로 환생시켜 인기를 누린 경우다. 이번 앙코르 무대는 박은태, 최재림, 강홍석이 드렉퀸인 롤라 역으로 무대에 등장해 비교할 수 없는 끼와 흥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은 막을 내렸지만 오랜 세월 인기를 누린 사례로는 ‘헤드윅’도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공산 정권하의 동베를린을 벗어나기 위해 트랜스젠더의 삶을 선택하지만 잘못된 싸구려 성전환수술로 사타구니에 1인치 살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이도 저도 아닌’ 존재다. 처음에는 신기한 듯 헤드윅의 넋두리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점차 트렌스젠더가 아닌 인간 헤드윅을 이해하며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 각별한 묘미다. 조승우나 오만석, 조정석, 김다현 등 간판급 꽃미남 배우들이 거쳐간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단 두 명의 남자 배우만 등장하는 ‘쓰릴 미 Thrill me’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사례다. 스스로를 니체의 초인이라 여길 만큼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받던 두 청년이 이유 없는 유괴와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다. 한 명은 파괴를 통한 자극을 위해서였고 다른 한 명은 그런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류정한 김무열 등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미남 배우들이 등장했었는데 극중에서 사실 이들은 모두 동성애자들이다. 키스씬도 등장하고 남성끼리 애정행각도 벌이는 등 성소주자의 모습이 꽤나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성적 소수자의 등장을 단순히 충격적인 캐릭터를 통한 별난 자극쯤으로만 여긴다면 절반짜리 이해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작품들의 진정한 묘미는 성 정체성 그 자체보다 이들이 겪는 인격적 성숙이나 휴머니즘의 공감대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대는 이들 성적소수자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정상’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풍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극 뒤에 숨겨진 보편적 감동의 원리를 찾아낼 때 비로소 작품에 대한 이해가 완성된다는 점은 간과되어선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기회가 허락된다면 꼭 도전하라 권하고 싶은, 코로나 19도 막을 수 없는 요즘 볼 만한 최고의 무대들이다. 

필자소개 -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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