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연주. 왼쪽부터 김지희(해금), 김영길(아쟁), 정준호(장구), 윤서경(아쟁), 김정림(해금)

해금과 아쟁. 국악기 중에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 악기’는 단 두 개뿐이다. 관악기처럼 소리를 길게 뻗어낼 수 있어서 현악기이면서 관악합주에 편성되는 악기도 이 둘 뿐이다. 해금이 바이올린처럼 높은 소리를 낸다면 아쟁은 첼로처럼 중후한 음색을 가졌다. 조선 시대 궁중 음악에도 쓰였고 오늘날에는 전통 춤이나 노래의 반주 악기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헌의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두 악기 모두 조선 이전부터 이 땅에서 연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단짝처럼 붙어있기 일쑤인 이들은 현대에 이르러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영욕의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해금을 아쟁이라 부르는 이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국악기는 흙, 돌, 쇠, 실, 가죽, 나무, 대나무, 바가지(박) 등 악기의 주재료에 따라 여덟 가지로 구분 짓기도 한다. 재료 이름을 한자로 바꿔 토부, 석부, 금부, 사부, 혁부, 목부, 죽부, 포부로 나누는 것이다.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나 대금 등 관악기는 주로 죽부에 포함되고 현악기는 대체로 사부에 속한다. 소리에 관여하는 주재료가 명주실이기 때문이다. 해금과 아쟁 역시 사부에 속한다.

천의 얼굴을 가진 악기 : 해금

▲ 해금 <출처: 국립국악원 국악아카이브 누리집>
그런데 해금의 생김새를 보면 명주실을 꼬아 만든 현은 달랑 두 줄 뿐이다. 대나무로 만든 공명통에 가느다란 대나무를 끼워 만든 몸체, 대나무와 말총을 연결해 만든 활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나무로 만들고 관악기의 선율을 연주하는 해금은 현악기와 관악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하여 ‘비사비죽(非絲非竹)’이라 불리기도 한다. 

해금 연주자들은 두 줄의 현에 왼손의 손가락 네 개를 얹고 쥐락펴락하며 음정을 만든다. 미세한 음정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어 음 체계가 다른 서양 음악도 수월히 연주한다. 활대를 사용하는 여느 악기들이 활을 팽팽하게 조인 채 연주하는 것과 달리 해금은 오른손으로 활의 장력을 조절하며 연주한다. 다채로운 음정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무장한 해금은 그만큼 쓰임새가 많다. 현악기이면서 관악기의 역할까지 해내기 때문이다.

‘깡깡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익살스러운 소리로 해학적인 장면을 묘사하기도 하고 서양 현악기의 금속성 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비애를 표현하기도 한다. 재즈와도 어울리고 현대 음악과의 앙상블도 훌륭히 소화해낸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광고 음악으로도 각광받는다. 

대중과의 접점이 많았던 덕에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해금 연주곡들이 많고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해금 연주자들도 많다. 그중 한여름에 듣기 좋은 음반으로 강은일의 ‘오래된 미래’, 꽃별의 ‘숲의 시간’을 추천하고 싶다. 두 음반에는 모두 ‘초수대엽’이라는 제목의 곡이 실려 있는데 해금을 비롯한 악기 두엇으로 담박하게 연주한 곡들이다. 우리 전통 성악곡인 가곡 중 ‘초수대엽’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다. ‘초수대엽’은 가곡 한바탕을 이어 부를 때 제일 처음으로 부르는 곡이다. 해금이란 신세계에 첫발을 딛고자 한다면, 함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음반들이다.

더 깊이 스미는 나지막한 울림 : 아쟁

▲ 대 아쟁 <출처: 국립국악원 국악아카이브 누리집>

19세기 이전에는 선비들의 악기, 거문고가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불렸다. 20세기는 가야금, 21세기는 해금의 전성시대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다음 세대의 악기로 아쟁을 꼽는다.

‘가거대피해’는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등 다섯 가지 국악기를 가리키는데 여기에 끼지 못하는 여섯 번째 국악기가 바로 아쟁이다. 고음을 구사하는 러시아 가수에게 ‘아쟁 총각’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이름은 알려졌으나 악기의 모양새나 속성은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악기다. 해금과 같이 관악기의 속성을 지닌 현악기로 연주법의 다양함과 악기의 쓰임새가 결코 해금에 밀리지 않는다.

모양만 봐서는 가야금 거문고와 비슷하다. 나무로 된 긴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얹어 만든다. 산조 아쟁과 개량 아쟁에는 말총으로 만든 활을 사용하고 궁중 음악에서 쓰는 대아쟁에는 개나리나무를 깎아 만든 활대를 쓴다. 국악 합주에서 주로 저음의 영역을 도맡고 있으며 창작 곡의 협연 또는 독주 악기로 부상 중이다.

아직 다른 악기들처럼 국악 전 장르를 아우르는 음원들을 풍요롭게 구비하고 있지 않다. 아쟁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아쟁컴퍼니 아로새김’, ‘아쟁앙상블 보우잉’의 음반에 옛 음악을 재해석한 곡과 창작곡이 비교적 고루 담겼다. 도널드 워맥의 ‘소리(sori)’라는 곡은 원래 해금, 첼로, 장구 편성으로 작곡되었지만 국립국악원 연주자들이 해금, 아쟁, 타악 편성으로 편곡해 공연한 바 있다. 유튜브에서 두 가지 버전을 찾아 들어보면 아쟁과 첼로의 질감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컨템퍼러리 댄스 그룹 모던테이블과 여러 차례 협연한 아쟁 명인 김영길의 음반 ‘Coree: L’art Du Sanjo D’ajaeng’에는 전통 기악곡의 백미 산조가 담겼다. 모두 만나보면 아쟁이 한층 친밀하게 여겨질 것이다.

국악기 중 찰현 악기는 아쟁과 해금뿐이다. 서두의 이 말은 틀린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험과 도전 정신으로 충만한 후세의 예술가들이 국악기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병기의 ‘미궁’ 공연 영상을 찾아보면 활대로 가야금을 연주하는 명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의 음반에도 활로 연주한 거문고 곡들이 실려 있다. 쉽사리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국악이 이만큼 왔다. 그러니 이제 해금과 아쟁은 그만 헷갈릴 때도 되었다.

필자 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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