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정원엔 봄빛이 쏟아지고 있다. 모란꽃을 비롯한 봄꽃들이 화사하게 되었다. 효령대군의 다섯째 아들 영천군(永川君)이 이맛살을 찡그리며 정원으로 나왔다. 일필휘지로 그림이 잘되지 않아서다. 평소 같았으면 마음만 먹으면 생각대로 후딱 그림이 그려졌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엊저녁의 꿈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죽마고우와 같은 서거정과 평양에 갔다. 풍류에 능한 서거정이 앞장서 평양의 주류천하를 즐기려는 속내로 갔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생각했었던 여인들은 모두 중국 사신 영접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영천군은 속이 너무 상했다. 조선의 예쁜 여인들은 왜 중국놈들이 차지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이르자 배알이 꼴렸다. 그렇게 속이 상할 때 그는 술에 의지하였다.

지금이 딱 그 분위기다. “김서방 게 누구 없느냐?” “예 나으리! 불러계시옵니까?” 마침 옆을 지나가던 하인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너 지금 당장 사재 감직장(司宰 監直長)댁에 가서 사가정(四佳亭·서거정徐巨正) 나리를 모셔 오너라!” “예. 나으리...” 하인은 나는 듯이 이웃에 살고 있는 서거정 집에 가 영천군의 말을 전하고 사가정을 모셔왔다. “영천군 나리! 오늘은 무슨 일로 대낮에 나를 부르시오?” 그들은 동갑내기로 출생 신분은 다르지만 동문수학으로 너니 내니 하는 술친구다.

영천군은 왕실에서 알아주는 옥골선풍의 헌헌장부로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로 평판이 나 있으며 사가정 역시 26세에 장원급제한 조야(朝野)에서 기대가 큰 인물이다.

사가정은 넓은 정원에 봄꽃인 영산홍·모란·유채 등이 화사하게 피어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여인같이 보였다. 지금 영천은 이 꽃들을 보고 술과 계집 생각에 자신을 부른 것으로 직감하였다.

동문수학에 동갑내기인 사가정은 영천군의 마음 움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내다. “이 좋은 날씨에 뭘 하고 있었소이까?” 영천군이 사가정을 반갑게 맞는 어투다. “예 나리, 성상께서 사가독서(賜暇讀書) 특정을 주셔서 독서를 하고 있었나이다.” 사가독서란 촉망받는 젊은 학자에게 독서할 시간을 임금이 주는 일종의 휴가를 말함이다. “허허, 그거 잘됐소이다. 나하고 술이나 한잔 하자고 부른 것이요... 사가독서의 특전을 받았으니 축하주를 해야지! 아주 잘 됐소이다...” 연천군은 사가정을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림을 그리다 화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정원에 나왔는데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을 보자 문뜩 술과 계집이 떠올랐던 것이다. 계집하면 술이 떠오르고 또한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사가정이 생각났다.

이때다. 하인이 사랑채에 술상을 차려 놨다고 알려주었다. “이놈아! 옛 시에 춘소화월직천금(春宵花月直千金)이란 말이 있듯이 이 좋은 꽃들을 두고 어찌 침침한 방에서 계집도 없는데 술을 마시라는 것이냐?” 영천군이 사가정에게 눈짓으로 밖에서 마시자는 신호를 보낸다.

그들은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정원에서 술판을 벌였다. “너 장악원(掌樂院)에 가서 김주부를 급히 오라고 하여라...” 옆에 서 있던 하인이 나는 듯이 달려가 김주부를 잡아오듯 데려왔다. 영천군은 김주부를 보자 “우리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좋은데 빠진 게 있어 좋은 아이 두 명을 보내주게! 이거 어디 술맛이 나야지...”라며 입맛까지 다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김주부가 코가 땅에 닿을 듯이 허리를 굽히면서 “영천군 나으리! 황공하게도 지금은 그런 아이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라면서 연신 손까지 비볐다.

여기서 좋은 아이란 남자를 아직 접하지 않은 동기(童妓)를 지칭함이다. 그는 아무리 예쁜 계집이라도 사나이 손이 닿았던 계집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결벽증이다.

옆에 있던 사가정이 입을 열었다. “영천군 나리, 날씨도 좋으니 송도 나들이를 떠나심이 어떠하신지요? 소인도 마침 사가독서 휴가를 성상께서 주셔서 홀가분합니다. 송도엔 지금 자동선(紫洞仙)이란 황진이를 뺨치는 기녀가 있다하옵니다. 한번 찾아감이 어떠하실 지요?” “허허 듣던 중 기분 좋은 소리요! 내 그래도 엊저녁 꿈이 찜찜했는데 잘 됐소이다...” “꿈이 찜찜하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내가 엊저녁 꿈에 송도에 갔는데 청교방 거리에 예쁜 아이들은 중국 사신 영접에 모두 동원됐다는 거야. 그 소리를 들으니 배알이 꼴리어서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어...장녕(張寧)이란 사신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 원 쳇쳇...” 꿈일망정 왕손(王孫)으로 마음이 많이 상했던 것 같았다. ‘옛 절은 말이 없어 어구 옆에 쓸쓸하고 / 저녁 해가 높은 나무에 비치어 더욱 서럽구나 / 쓸쓸한 경치는 남은 승려의 꿈속에서나 / 영화롭던 그 시절은 깨어진 탑머리에나 /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 /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 / 송악산 영화롭던 옛 모습 생각하니 / 지금처럼 봄이 가을 같을 줄 어찌 알았으랴 ’ 황진이의 《만월대를 생각하며》다.

조선은 이씨의 나라였다. 역성혁명으로 왕씨의 나라가 이씨의 나라가 됐지만 백성들은 고려때 그대로다. 영천군의 꿈에 보인 평양에서의 중국 사신 영접이 왕손 이전에 같은 사내로서 마음이 퍽이나 많이 상했을 것이다. 아무튼 둘도 없는 죽이 척척 맞는 영천군과 사가정은 마시던 술상을 물리고 평양을 향하여 길손이 되었다.

달랑 몸만 나귀에 실은 채다. 무악재와 북한산 그리고 파주와 장단을 거쳐 천수원(天壽院)에 다다랐다. 이제 송도(현 개성)가 머지않았다. 영천군은 청교방 거리가 눈앞에 아른아른 해 단숨에 송도로 달려가고 싶다. 그런데 풍류객 사가정은 바쁜 것이 없다. “영천군 나리, 이곳 천수원은 고려500년 동안 중국 사신을 영접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풍치가 아름답고 오밀조밀한 자연미에 중국 사신들이 만족해하였던 곳이기도 해요. 원래는 천수사란 절이었는데 조선에 들어와서 천수원으로 개명되었습니다.” 그들은 이튿날 송도팔경(松都八景)의 하나인 청교역에 다다랐다.

청교역하면 고려시인 이제현(李齊賢)의 《청교송객》을 사가정은 떠올렸다.‘작은 시내 깊은 곳에 버들가지 날리고 / 보슬비 개고 나니 풀잎이 연기 같다 / 손님이야 가건 말건 무슨 상관이리오 / 술 한통 옆에 놓고 좋은 산천 즐겨보리’ 그랬다. 사가정은 가는 곳마다 시와 술을 생각했고 영천군은 그림과 여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에까지 소문이 자자하게 퍼진 자동선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갈수록 입에 침이 마르고 마음이 바빴을 터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