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김삼의당(金三宜堂) <제9話>

약업신문 편집부
2017-10-11 09:36
결혼준비에 온 집안이 분주하다. 둘째딸 하미(河美·가명)를 시집보낸다. 과거준비로 한양에 간 하립은 결혼 날짜를 2~3일 앞두고 내려오기로 되었다. 없는 살림에 결혼 준비라 해도 사실상 크게 할 일이 없다. 머리까지 잘라 팔아 남편 과거 뒷바라지를 하고 있으나 딸 시집 갈 때 주려고 장롱 속 깊숙이 감추듯 넣어두었던 것을 주려한다. 옥비녀와 쌍가락지다. 이번엔 시집가는 둘째딸 하미에겐 옥비녀를 주려한다. 맏딸 하련(河戀·가명)은 쌍가락지를 주었다.

1787년 어느 봄날이다. 꽃 궁궐로 소문이 난 삼의당의 집은 이름처럼 온통 봄꽃으로 병풍이 되었다. 이번에 시집가는 둘째 하미는 꽃 궁궐의 공주처럼 아름답고 곱다. 딸은 그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과 같이 하미는 삼의당을 쏙 빼닮았다. 이웃마을 심연택(沈演澤·가명)의 자제가 몇 년전부터 하미를 따라 다니는 것을 삼의당은 눈치를 챘다.

심씨네도 향반 처지다. 향반 집 딸을 따라 다니는 상대가 고관대작의 자제 일리가 없다. 삼의당은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으나 당사자의 뜻에 따라 만남을 인정하여 화촉동방을 치르게 되었다. 내실엔 하미의 화촉동방이 차려졌고 건넛방에는 20여 년 전에 초야를 치른 부부가 한 이불속에서 뜨거운 살을 비비고 있다.

하립이 삼의당의 손을 끌어당긴다. 화촉동방을 치르면서 만졌던 그 손이 아니다. 섬섬옥수는 간데없고 손등은 거북 등처럼 거칠고 딱딱해졌다. 하립은 삼의당을 뜨겁게 쓸어안았다. 하립의 뜨거운 눈물이 삼의당 얼굴에 주르르 떨어졌다. “왜 그래요? 당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소첩이 자청한 일인데요. 당신은 자책 하시지 않아도 돼요. 이 소첩의 정성이 부족하여 선대께서 우리의 희망을 들어주시지 않으신 거예요... 이번 과거엔 틀림없이 등과하실 거예요...” 삼의당이 하립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늘엔 밝은 달빛이 가득, 뜰엔 꽃이 가득한데/ 꽃 그림자 어울린 데다 달그림자까지 어울렸네요./ 달빛인 양 꽃인 양 낭군님 마주보고 앉았노라니/ 세상의 영욕 따위야 누구네 집에 있는 이야긴지요.’ 《낭군과 달빛 속 노닐다가》다.

지금 삼의당은 하립의 뜨거운 품속에서 깊은 상념에 잠겼을 게다. 옛 영화의 재현이 집안의 최대 숙원이지만 그 꿈이 점점 멀어져 감을 분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하립은 품안에 들어온 삼의당을 뜨겁게 달구었다. 내실에선 둘째딸이 화촉동방을 차렸고 건넛방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 이불속에서 뒹굴고 있다. 삼의당의 등살에 밀려 과거공부를 핑계로 산사로 한양으로 쫓기듯 다니면서 웅크리고 있었던 하립의 정욕이 일시에 폭발하였다.

하립은 아마도 내실에 딸의 뜨거운 화촉동방을 자신의 20여 년 전의 초야를 떠올리면서 삼의당의 마른 등걸 모양 뻣뻣해진 몸의 아래 위를 오르내리며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립은 이삼일 후엔 다시 한양으로 가야할 몸이다. 낮에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흥겨운 술잔을 돌려 아련한 흥취에 젖은 상태다.

한양 두실대감댁에 있을 때 고급 요리 집에 두실과 동행하여 가본 적이 있다.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기생을 봤으나 하립은 아내 삼의당이 눈앞에 어른거려 거들떠보지도 않자 “왜 기생이 마음에 들지 않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딴 아이를 부르지! 자네 과거 준비에 힘이 들거야... 그리고 집 떠나면 고생이야... 내 애기 해 놨으니 오늘은 여기서 객고도 풀고 아침에 집으로 오게....” 라고 했던 두실의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하립은 아득히 멀어진 18살 때의 화촉동방을 떠올리려 했던 것이다. 복사꽃보다 더 곱고 함박꽃 보다 더 희고 수양버들처럼 낭창낭창한 삼의당을 떠올리며 숨죽였던 욕정을 채우려 한다. 그런데 지금 품안에 있는 삼의당은 그 옛날 여자가 아니었다.

석녀(石女)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달구려 해도 뜨거워지지 않았다. “소첩은 생각하지 마시고 서방님이나 즐기세요! 소첩은 여자이길 포기한지 오래예요! 큰딸과 둘째딸 출산 이후 소첩은 당신의 아내에서 두 딸의 어머니가 되었고 경재 시아버지 며느리로 살기로 결심했어요...” 삼의당의 목소리엔 울음이 섞였다.

하지만 사내는 달랐다. 아내 배 위에서 춤도 추면서 노래도 부르며 욕심껏 놀았다. 한양 술집에서 장악원 출신 기생과 합방했을 때를 떠올리며 한껏 흥을 돋웠다. 하립은 등골에 송골송골 땀까지 솟았다. “좋으셨어요?” 석녀모양 미동도 않던 삼의당이 뒤처리도 하지 않은 채 하립을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올시다! 당신이 어울려 주지 않으니 도무지 흥이 나야지... 당신이 많이 변했어...” 멋쩍고 아쉬운 말투다. “당신만 좋으셨으면 됐지요! 소첩은 그것을 첫날 밤 이후 잊고 산지 오래예요...” 삼의당의 말끝에도 여자로서 떨쳐버릴 수 없는 성정이 깃들은 어투였다.

삼의당은 지금 배란기다. 잠자리를 거부하고 싶었으나 며칠 후엔 다시 한양으로 떠날 남편을 뿌리칠 수 없었다. 또 삼의당은 딸만 둘을 낳았지 대를 이을 아들을 출산하지 못해 시아버지한테 항상 죄의식을 갖고 있는 상태다.

더 늦기 전에 하씨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금도 남편이 욕심을 채우고 내려왔어도 당장 뒤처리를 하지 않음도 행여 임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효도는 내 어버이에게서 시작하고/ 공경은 내 형제에게 먼저 하는 것/ 참으로 이 두가지만 채울 수 있으면/ 천하에 다른 것 채울게 없네./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지만/ 다섯 가지 가운데 신(信)이 가장 귀하니/ 그것으로 날마다 내 몸을 살피리라.’ 《무제 無題》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삼의당은 한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하립과 결혼하여 첫날밤 황홀했었던 마음을 아름다운 추억의 창고 속에 감추어 놓고 하씨 집안의 며느리로 충실함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하립의 여자로서가 아니라 하씨 집안에 들어와 대를 잇는 아들을 어떻게든 낳아야겠다는 마음에서 뒤처리를 미적미적 하고 있는 것이다.

욕심을 마음껏 채운 하립은 코를 골며 금방 잠에 빠졌다. 삼의당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잠에 빠진 하립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서 야릇한 배신감이 생겼다. 좀더 적극적으로 풀무질을 해주었던들 고개 숙였던 욕정이 되살아 날수도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남녀관계란 참으로 신묘한 것이란 생각이 들자 동창이 밝고 해가 불쑥 떠오름이 공연히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