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련
·영남대 약대 교수



▶ 안데스(Andes) 해발 4,100m를 향하여

2003년 9월 14일,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새삼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비행기에 올랐다. 1968년 내 나이 아직 20대! 그 좋은 시기에 난생처음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때의 심경과 유사했던 것은 낯선 문명의 흔적을 찾아 세계의 오지 안데스 산과 아마존 정글을 간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나 뉴욕과 마이애미를 거쳐 2박3일 33시간만에 볼리비아(Bolivia) 수도 라파즈(La Paz)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국제공항에 내렸다.

그곳은 봄이 시작되는 9월의 차가운 새벽 5시, 온도는 섭씨 4도. 그러나 해발 4,100m에 위치한 공항(세계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국제공항)은 왜 그리도 춥던지!

입국수속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아슬아슬 비탈길을 내려가다 문득 타고있던 차를 주목하게 되었다. 택시의 빽 미러는 파손 된지 오래인 듯, 보이지 않았고 핸들도 온전치 않았으며, 문짝도 투덜렁렸다. 이런 차를 타고 약 40분을 내리 달려 국제학술행사장으로 정해진 시내 호텔로 갔다.

길거리엔 이른 새벽인데도 여기 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보였다.

호텔은 3,600m 정도의 높이에 있어 낮은 산소량과 고도 때문에 그곳에 머무는 일주일 내내 적지 않게 고생했다.

▶ 티티카카(Titicaca) 호수와 티와나쿠(Tiwanaku, 스페인식 표기:Tiahuanaco) 문명을 찾아

학회행사 일주일 기간 중 하루는 고대문명을 찾아가는 날이 있었다. (참고 : UNESCO 주관 국제인류식물학회) International Ethnobotany Symposio로서 여러 문화권에서 인류와 식물의 관계, 즉 문화, 식품, 의약 등에 관련된 식물을 대상으로 한 학술회의였다. 이 학회에는 우리대학 이승호 교수가 동행하였고, 본인은 이 행사 첫날 개회 때 사회를 맡았으며 `한반도 전통의약의 과거와 현재'라는 강연을 하였다.)

첫째로는 안데스 산맥 속 해발 3,800m 높이에 있는 호수 (제주도 반 만한 면적으로 남미에서 두 번째로 크고 세계에서 군함이 다니는 유일한 호수) Titicaca의 장관과 그 주변에 있었던 고대와 현재의 문명을 둘러보는 것이었다〈사진 1〉. 또 다른 하나는 이 호수에 이웃하며 아직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BC 1,500년경에서부터 잉카(Inca) 이전까지의 신비롭기까지한 웅장한 석조 궁전 유적지가 있는 Tiwanaku 문명지대였다〈사진 2〉.

기대에 부풀어 호텔을 떠나 두 시간 여,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고 검문소를 지나 시골길로 접어들자, 그 전날부터 농민과 시민 데모가 일기 시작해 (그 뒤에 계엄령이 선포되더니 몇 일전 2003년 10월 중순에는 대통령이 하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로가 차단되고 안전이 위협을 받기 시작하여 안전한 길을 찾아 돌고 돌아가며 겨우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도중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특히 티티카카 주변에서 15000여년전 그곳 원주민들이 처음으로 담배를 발견하고 신이 내린 신령스런 식물로 여겨 애용하며 중미, 북미, 유럽, 급기야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담배 오백년의 이야기 2003, 참조) 오늘날의 커다란 문제 거리로 인식되는 그 담배에 관하여 무엇인가 배우고 느끼려 하였으나 그럴 형편이 되질 않아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음은 큰 아쉬움이었다.

티티카카 호수를 이웃하여 약 4,000년 전 이 높은 곳에 석조궁전을 건립했던 Tiwanaku 문명의 놀라움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안데스의 웅장함을 둘러보며 감탄과 경이로움으로 가슴 벅차 말을 잃어버린 하루였다〈사진 3〉.

주변을 둘러보니 끝없는 평지가 분지를 이루었고 멀리 사방으로 둘러싼 해발 7,000m 이상의 병풍 같은 산 위를 하얀 눈 얼음이 띠를 두른 듯 그 경관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엔 내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절감했다.


<사진1> 티티카카 호수에서.
<사진2> Tiwanaku 문명지대.
<사진3> Tiwanaku(Tiahuanaco) 해발 3,870m.


▶ 안데스(Andes) 7,300m 위용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

학회를 마친 다음 날 우리는 안데스산 속 높은 해발 4,100m 지점까지 아슬아슬하고 험준하며 원시적 상태를 지닌 좁은 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여행한 뒤 걸어서 해발 약 4,200m 전후까지 다녀왔다〈사진 4〉. 이교수가 지참한 고도계는 4,000m에서 마비가 되어 더 이상 정확하게 얼마를 올라갔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걸어다닌 왕복 2시간은 무척이나 힘겨웠다. 구름과 산, 얼어붙은 눈과 그 속에 하나의 미미한 점(point)으로 살아 움직이는 우리들 모습… 안데스의 장엄함과 자연의 신비를 감상하며 이런 곳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 대해 한없이 감사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그저 감탄뿐이었다.


<사진4> 안데스 산 7,900m 위용을 바라보며.

누군가 `무엇이냐?' 라고 내게 물으면 한마디로 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내 인생관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말할 것이다.

문득 사르트르(Sartre)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평가받은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르헨티나의 명문가 출신인 그가 어떻게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어렵고 고통받는 남미사람들을 위해 혁명가로 변신했는가?'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도 영광은 뒤로 남기고 또다시 험준한 이곳 볼리비아 안데스의 산악지대에서 혁명군으로 살았던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꽃다운 39세에 포로로 잡혀 이곳에서 처형당한 뒤 이 험준한 안데스의 계곡 속으로 버려진 혁명가이자 시인이었던 그의 글 하나가 들려오는 듯 하였다.

“내 나이 열 다섯 살 때/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이곳 깊은 계곡어디에서 또는 높은 산 위 하늘에서 마치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시가 연기와도 같은 구름 속으로 그의 넋이 떠돌고 있을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의 모습이었다. 하늘과 어우러진 산, 안개 가득한 깊은 계곡, 이 사이를 스쳐 지나는 구름과 바람을 느끼며 심호흡을 할 뿐 더 이상 아무런 상념도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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