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약국으로 보낸 메트로니다졸 (metronidazole) 처방을 확인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환자분이 여기 계신데 자신은 감염증 진단을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셔서요.”

지역약국의 약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해당 환자의 의무기록을 찾아 보니, 아뿔싸, 당뇨병약인 메트포민 (metformin)을 처방해야 했는데 실수로 약이름이 비슷한 metronidazole이라는 항생제를 처방한 것이었다!  전자의무기록으로 처방할 때 “met”를 치면 met로 시작하는 여러 약들이 뜨는데, 오늘따라 클리닉이 너무 바빠서 약이름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처방전을 보낸 것이다.  다행히 지역약국의 약사가 환자에게 복약지도를 하는 동안 처방 실수를 발견하고 이를 알려 주어 매우 고마왔다.  

처방 실수 (prescribing errors)는 비교적 흔하다.  지역과 의료 시스템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1000개의 처방당 3-100개의 빈도로 처방 실수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방 실수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연구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컬럼에서 여러 번 다루었듯이, 처방 실수는 드물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약의 모양이나 이름이 비슷한 것이 여러 개 있으면 처방 실수가 일어나기 쉽다.  위의 metformin과 metrodinazole이 좋은 예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약들을 ‘look alike, sound alike’ (비슷한 모양이나 비슷한 이름)이라고 구분하고 이런 약을 처방하고 조제할 때 처방자와 약사 모두 좀 더 조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처음으로 허가받은 오리지널약만이 상품명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오리지널약 뿐만 아니라 제네릭약도 상품명을 가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네릭약의 상품명이 비슷한 것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보자. 베아베린과 베아셉트는 상품명이 비슷한 제네릭약들이다.  그런데, 베아베린은 프로피베린 (propiverine)이 성분으로 요실금에 쓰이는 약인 반면, 도네페질 (donepezil)이 성분인 베아셉트는 치매에 쓰인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다른 적응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상품명을 가진 제네릭약이 많아 약이름의 혼동으로 인한 처방 실수가 일어나기 더 쉽다.

의사가 처방 실수를 하더라도 약사가 이를 발견하고 의사에게 알려 고칠 수 있도록 하면 환자가 처방 실수로 인해 해를 입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위에서 기술한 대로, 내 처방 실수를 잡아내 고치도록 한 지역약국의 약사가 좋은 예이다.  이 약사는 복약지도 과정에서 처방 실수를 발견했지만 이 과정에서 처방 실수를 모두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환자가 적응증을 모르거나 같은 적응증을 갖지만 금기 등으로 인해 환자에게 쓸 수 없는 약을 처방한 경우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은 약사가 환자의 전자의무기록을 읽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의무기록에는 의사가 왜 이 약을 처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원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는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을 접근할 수 있지만 지역약국의 약사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미국의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한 기관 (Institute of Safe Medication Practice; ISMP)은 처방전에 적응증 또는 진단명을 기재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즉, 처방전에 적응증 또는 진단명이 담겨 있으면 약사가 왜 이 약이 처방되었는지 알 수 있어 처방전을 좀 더 꼼꼼히 검토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환자에게 잘못 처방된 약이 전달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부 약의 처방에 한해서 의사가 처방전에 진단명을 기입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17년부터 오하이오 주 등 일부 주에서는 오남용으로 부작용의 폐해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모르핀과 같은 아편계 진통제를 처방할 때 진단명이 빠지면 약국에서 교부할 수 없도록 법제화했다.

처방전에 진단명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널리 이용하는 것이 질병분류기호이다.  질병분류기호는 국제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가 분류한 질병들을 간단하게 기호로 만든 것으로 현재 국제 표준으로 쓰이고 있는 질병분류기호는 ICD-10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 코드이다. 예를 들어, 2형 당뇨병의 ICD-10 코드는 E11 이며, 고혈압은 I10이다.  질병분류기호는 의사가 어떤 진단을 내렸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써 누구나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해볼 수 있어서 이 기호를 보면 어떤 질병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질병분류기호는 우리나라에서 처방전에 기입해야 하는 항목 중 하나이다.  이는 약물을 안전하게 사용하는데 도움을 주는 제도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왜냐하면, 환자의 요구가 있으면 의사는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입하는 것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난이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많은 처방전이 이곳을 비워 두고 있다.  실제로, 2017년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의원을 방문했을 때 어떤 의사도 어머니에게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을 생략하는 것을 원하는지 물어 보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받은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 기입난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었다.  

환자의 요구가 없는데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질병분류기호의 기입을 생략하는 이유는 환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처방전이 약사를 제외한 제 3자의 손에 들어 가면 개인정보가 누출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처방전에는 신용카드 정보 등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연결되어 있는 주민등록번호도 기입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환자에게 처방전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 사용을 위해, 법이 규정한 대로 처방자로 하여금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입하도록 해야 한다.  또, 환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약사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질병분류기호에 따른 진단명 등 처방전에 기입된 모든 환자 개인정보를 제 3자에게 알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경우, 처방전의 질병분류기호는 보험금 청구에 필요하기도 하다.  따라서, 첫 진료를 받을 때부터 질병분류기호가 기재되어 있는 처방전을 발급받는다면 실손보험에 청구하기 위해 필요한 질병분류기호가 빠진 처방전 때문에 의원이나 병원을 다시 방문해야 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안전한 약 사용을 위해 처방전의 질병분류기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가 빠져 있다면 이를 기입하도록 환자가 요구해야 한다.  아, 그리고, 의사가 처방전에 질병분류기호를 기재하는 것에 대해 환자가 내야 하는 비용은 무료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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