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82세인 Leo Ellis씨는 버클리지역 YWCA의 자원봉사자로 나를 포함한 여러 명의 외국인 학생들에게 1대1로 영어를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나의 직장 동료였던 분이 폐암을 소천하셨는데, 이분이 24년 전 암에서 치료된 애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 당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건설회사인 Bechtel의 남미지역 마케팅 부사장으로 있었는데, 성공적인 치료담을 그의 비서를 통해 타이핑한 편지를 제공받았다. 아래는 그 편지의 번역(1회분 원고라 좀 줄임)이다. 그의 아내(80세)도 10년 전에 유방암이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암이 모두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여러분께,                                                                          1983년 9월 30일

지난 3개월은 아주 특별하였습니다. 나의 세계관은 나의 방광암 발견 이후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의 아내와 그녀의 수양아버지는 의사로서 나의 병과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제 나는 아르헨티나로 돌아왔고 모든 것이 끝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방광암을 발견하게 된 것은 며칠 동안 소변 속에서 피가 섞여 나온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입니다. 의사들은 감염여부를 확인하고, 의심되는 담석이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었는데,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X Ray상으로는 어떤 종양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검사의 기간 동안에 나의 몸은 쇠약해져만 가는 것 같았습니다. 등쪽으로부터 계속되는 통증이 있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의 마지막 검사는 방광내의 세포를 검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암종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엘라와 나는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으로 온 것은 좋은 의사를 찾기 위함은 아니고 가장 좋은 의료시설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의 부족한 스페인어도 이유가 됐습니다.

6월 26일 화요일 미국에 도착해서 다음날 비뇨기과 전문의가 방광을 검사했고, 금요일에는 요도를 통해 두 개의 종양을 방광으로부터 떼어냈고, 이어 컴퓨터 단층촬영 등의 검사를 했으며, 다음 수요일 날 외과의사는 나에게 방광과 부속 장기를 즉시 떼어낼 것을 추천했습니다.

나는 그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방광을 떼어낸 이후의 삶의 질과 수술 성공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수술 후 사망률이 10-20%이고, 소변을 받아내는 주머니를 찬 채 2-5년 살 확률이 50%였으며, 수술하는 동안 신체의 다른 부위로 암세포가 전이할 높은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비뇨기과의사들도 이런 근원적인 수술을 추천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방광암세포는 천천히 분열되는데 내 경우는 이미 4기에 다다랐기 때문에 더욱 극단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라와 나는 세 아들들과 엘라의 수양아버지, 가정주치의, 친구들, 그리고 친척들에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의학논문들도 뒤져보았고, 공부도 하면서 소위 의사쇼핑도 하였습니다. 버클리대학의 의학도서관, 생물학 도서관, 그리고 스탠포드 의학도서관도 방문하였습니다.
여러 논문들에서 수술이 가장 널리 알려진 치료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친구들과 친척들로부터도 책, 기사, 제안들을 많이 받았으며, 아르헨티나에서도 전화를 받았습니다.
 
스탠포드에서 방광암을 연구하고 있는 레바논 베이루트 출신의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CAT를 찍은 후 의심되는 곳에 있는 세 번째 종양을 제거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방광 제거하는 수술을 권했습니다.

이 수술은 방사선치료로 암세포는 약화시키고, 방광을 수축시킨 다음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나는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임상단계에 있는 화학요법과 면역요법의 기회를 권고 받았습니다.

이때 나는 인터페론치료를 선택했고, 면역요법임상의 16번째 실험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200만 units를 받는데 나는 300만 units의 주사를 일주일에 3번 받았습니다. 부작용으로는 독감과 같은 증상을 갖는 것이었지만 24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수술과 인터페론은 천체치료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아무도 인터페론이 신체의 면역체계에 어떻게 작용해 효과가 있는지도 알지를 못합니다. 우선 나는 진통제 사용을 피했습니다.

진통제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우연히 비타민B를 다량 복용함으로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완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엘라의 수양아버지의 지도아래 Dietary Program을 시작했는데, 과일과 야채주스를 3리터 정도를 매일 마셨습니다. 많은 양의 비타민 미네랄   Selenium, Zinc, Vitamin A, B Complex, C, D, E, 마늘, 해수, Benzoic acid, 식초와 자연수 등을 마시고 복용했습니다.

또한 나는 정상세포가 암세포를 파괴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마음에 그렸습니다. 심리학적 치료를 통해 스트레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를 배웠고, 심리치료사에게도 갔으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운동도 했고, 육류와 사육고기, 가공식품과 지방을 피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모든 것이 치료에 필요했다고 봅니다. 어느 하나도 헛방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종양의 제거는 면역작용에 의해 제거될 수 있는 암세포의 수를 감소시켰을 것입니다. 면역체계를 자극하는데 긍정적인 사고가 역할을 하였으며, 적절한 영양공급에 의해 신체의 화학적 변화가 나타났으리라 생각됩니다.

걱정, 스트레스와 긴장은 우리 몸의 상태를 약하게 합니다. 운동은 신체상태를 균형 잡히게 해줍니다.

나의 세 아들과 아내가 나와 함께 했습니다. 엘라는 내가 치료를 잘 하도록 늘 감시하고 도와주었습니다. 9월에는 나의 방광에서 떼어낸 2 군데 세포에서 암세포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한달 후 조직검사와 방광의 육안검사를 해서 더 정확한 상황을 볼 예정입니다.

검사결과가 네거티브 반응이 나왔다고 했을 때 나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처음 진단을 받고 장기를 떼어내도록 강요 받은 것이 8주전이었으며, 만약 내가 2년도 못살 운명이었음에도, 의사의 지시대로 따라서 천천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면, 나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20년 이상 담배를 많이 피웠고, 커피와 지방 든 음식을 즐겼고, 일과 관련되어 ( PCG, 석탄, 기름부유물 등) 발암물질에도 많이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 다루는 법도 몰랐고, 운동도 하지 않았으며, 직장에서는 과중한 책임으로 일했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병을 다시 되돌려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치료법을 계속 사용할 예정입니다.

운동과 즐거움의 원칙들은 지속하고, 양을 줄이겠지만 계속해서 셀레니움, 비타민 A, C, 와 E을 복용할 것입니다. 신선한 야채와 주스로 마시며, 지방과 가공음식들은 적게 섭취할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지원과 지식으로 감사하게도 병을 이겼습니다. 우리 몸은 암세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우리의 면역체계가, 건강을 해치는 발암물질, 스트레스, 나쁜 식습관, 운동부족, 과도한 일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내게 있어, 긍정적인 사고는 매우 중요하였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중요할 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협력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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