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젊음이란 성장의 고통을 수반한다. 뭔가를 빨리빨리 이루기 바라 듯 성장도 성공도 그러한데, 이윽고 어떤 정점에 이르면 이때부터는 성장보다는 노화란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출생 후 약 25년이 경과하면 성장을 멈추고 서서히 노화과정을 겪는다. 노화를 대하는 일반적인 견해는 안타깝고, 슬프고, 아쉬움이 크지만, 필자는 “우리 모두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대중가요의 한 소절을 참 좋아한다. 
성숙과 숙성은 결코 서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질주하는 열차라 하더라도 종착역에 가까워 질수록 속도를 줄이는게 정상이다. 이에, 100세 시대의 고찰할 주제의 한가지로서 노인이 느끼는 시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시간의 종류와 측정법

문명세계속의 현대인은 시간을 시계를 통하여 인식한다.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은 ‘객관적 시간(objective time)’ 또는 ‘실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마음의 시간은 객관적 시간과는 달리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시간을 ‘주관적 시간(subjective time)’ 또는 ‘심리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주관적 시간은 객관적 시간에 비해 길다고 느낀다. 이는 시간을 과대추정(overestimation)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인 단 자카이는 시간에 대한 판단이나 예측을 전망법(prospective method)과 회고법(retrospective method)으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전망법’이란 어떤 일을 경험하는 동안 얼마나 시간이 경과되고 있는지에 대한 예측을 해 보는 방법이고, ‘회고법’은 어떤 일을 경험했을 때 그 일이 끝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회상하여 판단하는 방법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전망법에 해당한다. 보고픈 사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낀다. 이것은 시간의 흐름이 아닌, 다른 곳에 주의를 기울일수록 기다림의 시간을 짧게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기다리는 시간을 회고법으로 추정하는 경우에는 사건의 기억이 중요하다. 기다리는 동안에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대한 기억의 총량이 기다림에 소비한 시간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사건의 양이 많을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기다리는 사람의 주된 관심사는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 이므로 시계나 달력을 자주 보게 된다. 만약,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한다면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 시간은 변할 수 있을까? 기다리는 동안에 제공되는 시간 정보는 두 가지로 나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예상시간 정보’와 현재 기다림이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수정하며 알려주는 ‘시간위치 정보’이다. 정류장에서 버스의 도착예상 시각을 알려주는 전광판은 전자이고, 대기표를 뽑고서 남은 순서를 기다리는 은행이나 매표소의 전광판은 후자에 해당한다(그림 1).

                                그림1. 인생은 기다림 (출처: 2004년 영화 ‘터미널)

기다림의 주관적 시간은 객관적 시간에 비해 대체로 길게 느끼게 되는 과대추정이 일어나는데, 어느 정도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시간흐름 정보를 제시하고 기다리는 이유를 알게 되면 주관적 시간이 짧아지는 ‘과소추정’을 하게 된다. 특히,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는 즉시 만남이 이뤄지도록 연출된 회고법 추정실험에서는 30퍼센트 정도의 시간이 단축된 것으로 인식했다. 이는 10분이라는 객관적 시간을 7분 정도였다고 주관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예상한 대로 기다리다가 제 때에 만나는 것은 인내를 발휘했던 시간을 보상해주는 일종의 감동인 것이다.

노인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

프랑스 소르본대학교 교수였던 폴 자네는 “1년을 10세는 10분의1, 50세는 50분의1, 70세는 70분의1로 느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자각한다”라는 ‘시간수축효과(Time-Compression Effect)’를 주장했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호흡·혈압·맥박·체온·세포분열·신진대사 등 생체시계가 느려지고 행동이 둔해지는 것과도 관련성이 깊다. 

19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스 카렐은 “강물을 시간에 비유하면 청소년은 더 빨리 강둑을 달린다. 중년이 되면 속도가 느려지고 노년은 강물보다 훨씬 뒤처진다”고 밝혔다. 특히 행복감과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20세에 최고 농도를 기록하다가 10년을 주기로 5~10%씩 줄어드는 사실도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요인으로 꼽는다. 

각기 다른 연령대를 대상으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3분을 측정하라고 실험하였다. 그 결과, 10대는 2분50초, 40대는 3분30초, 80대는 4분20초가 지나자 3분이 경과했다고 답했다. 노인이나 중년은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 반면, 10대는 실제 시간이 더 길다고 감지한 것이다. 1995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피터 망간의 실험에서도 9~24세, 45~50세, 60~70세군은 각각 3분3초, 3분6초, 3분40초가 됐을 때 3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어린 나이일수록 뇌 신경세포의 정보전달 속도가 빠르고 모든 경험이 강렬하게 기억되는 반면, 나이가 들수록 속도는 느려지고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어린이는 모든 대상과 사건이 새로움으로 기억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각과 지성이 점차 퇴화하여 새로운 자극 없이 지나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는 고성능 카메라가 더 빠른 속도로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젊을수록 뇌의 성능이 우수하므로 같은 시간에 발생한 사건이라도 더 많은 프레임의 사진을 뇌에 저장하고 사건들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기억된다. 사진이 많을수록 연결해 놓으면 슬로모션이 확장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그래서 젊을수록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느낀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뇌기능이 저하되면서 뇌가 사건을 듬성듬성 촬영하므로 익숙한 일상의 모습들은 상대적으로 기억에 잘 남지 않아 많은 부분을 놓쳐버리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네덜란드 그로닝겐대학교의 다우베 드라이스마 교수는 2001년에 출간한 ‘나이가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서 시간수축 효과의 원인이 다음 세 가지라고 주장했다. (1)망원경처럼 과거의 일이 확대돼 시간거리가 축소되면서 최근 일로 기억하는 ‘망원경 효과’. (2)갈수록 기억의 지표로 사용할 경험이 줄고 기억력도 떨어지는데, 일상이 늘상 반복되는 30~40대는 기억이 단순화되는 ‘회상 효과’. (3)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량이 줄어 생체시계가 느려지는 ‘생체시계 효과’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체감시간을 늦추는 방법으로는,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과 추억을 많이 쌓아 기억할 일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첫 사랑, 첫 출근, 첫 창업처럼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일주일 동안 해외출장에서 돌아와서 문득 보름쯤 지난 것 같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이는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 뇌 속에 많은 기억을 생성하여 체감시간이 길어진 결과이다. 

시간의 상대성

프랑스의 지질학자 미셸 시프레는 1962년 7월 다량의 생필품과 식료품을 준비하여 시계없이 알프스 산의 130미터 깊이 빙하동굴에 텐트를 치고 63일 동안 어둠 속에서 지냈다. 그가 실험을 마친 때는 9월이었는데, 시프레는 그날을 8월이라고 대답했다. 시프레의 인식 속에서 25일이 사라진 것이다. 이 실험은 인체에 생물학적 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간은 어떤 외부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의식에서 생겨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 외에, ‘의식의 시간’ 곧 ‘본연의 시간’이 있는데, 이는 직관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개인 내면세계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뇌 속의 ‘선조체(striatum)’를 시간을 감지하는 기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뇌에 장애가 발생하면 아무 때나 먹고, 자고, 깨고, 한밤중에도 일을 하는 등 생활질서가 교란된다. 또한, 뇌에 이상이 생기면 시간의 질주를 경험하는데 이 환자에게 1분이 경과하면 표시하라 하면 5분이 경과한 후에야 답하는 등 인식 속에서의 시간이 실제보다 5배나 느리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뇌병변이 없는 정상인도 시간 감각이 항상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는 시간감각을 ‘박자기계’를 이용하여 실험한 결과, 사람들은 속도가 일정해도 소리가 점점 커질 경우 속도가 빨라졌다고 느꼈다. 그만큼 우리 뇌의 시간 감각은 외부의 변화에 취약한 것이다.
더불어, 문화에 따라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과거는 뒤에, 미래는 앞에 놓여 있다고 인식하지만 안데스 산맥에 거주하는 아이마라족은 과거를 물으면 시야의 앞쪽을 가리킨다. 과거의 사건들은 이미 한번 경험했기에 볼 수 있는 앞쪽에 있고, 미래의 사건들은 알 수 없으므로 등 뒤에 있다는 것이다.

노인의 기다림

기다림의 끝이 곧 미래다. 인지적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과거의 기억은 미래의 상상보다 생생하고, 상상은 미래가 멀수록 구체성은 낮아진다. 하지만 기억을 회상할 때보다 미래를 상상할 때 감정은 훨씬 활발히 반응한다. 사람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한다. 현재가 안타깝고 아쉬워도 미래의 보상은 풍성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과 기대가 기다림을 견디게 해준다.

감정이 존재하는 목적이 행동에 앞서 상황을 판단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행동하기 전에 이미 마음은 부정적인 것은 피하고 긍정적인 것은 받아들이도록 준비한다는 뜻이다. 기다림은 지루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를 알 면, 그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에 대한 통제감(sense of control)을 얻는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의 경과 시간을 풍요롭게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100세 시대에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노후준비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삶의 약 95%는 기다림의 연속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이다. 따라서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연속적인 기다림속에서 잘 느끼고 성숙해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100세 시대란, 기다림의 미학을 이해하는 사회적 환경과 개인적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지난 70여년동안 고도성장을 이루며 고속열차처럼 달려왔다. 그 속의 승객이었던 현재의 노인들은 속도감에 익숙해져 있다. 노화가 진행하면서 비록 육신은 느려지지만, 평생 지속되어온 기다림의 순간을 곱씹어보며 삶의 종점이 더 가까워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름다운 기다림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이제는 100세 시대의 후반기는 누군가를 기다리기 보다 자기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곧 기대감의 기다림이 아니라 마무리의 기다림을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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