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달갑지 않은 미국의 소송 문화

어느 유람선이 망망대해에서 침몰을 하고 말았다. 간신히 조그마한 구명배에 온겨탄 승객들은 얼마남지 않은 식량과 식수로 인해 급기야 모종의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생존자들은 한참을 토론 후, 왜 자기가 살아야 되는지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수결에 의하여 하나씩 바다에 던지자고 합의를 보게 되었다.

승객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의사요, 이와중에 당신이 아프면 누구를 먼저 찾겠소? 교사가 다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존경받는 고등학교 선생이요. 요즘 같은 교육 현실에서 나만한 교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요. 모두가 고개를 끄떡였다. 순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무직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있던 남자하나를 바다에 던지며 큰소리로 외쳤다. 저 사람은 변호사요! 순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만큼 미국에는 변호사들이 흔하기에 한 사람 쯤 사라져도 괜찮다고 풍자한 조크).

 이민 온 지 20 년이 넘은 어느 재미 교포의 얘기를 들어보자. 하루는 등기 우편 한장이 배달되었는데 담장 하나 이웃인 미국인이 고용한 변호사가 보낸 경고장이었다. 이 교포는 무게가 50 kg나 되는 검은색 사냥견을 기르고 있었는데 이놈이 이웃집 자녀들만 보면 사납게 짓어대서 아이들이 자기 집 앞마당에 나가길 무서워 하니 만약 개를 없애지 않으면 민사 소송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포는 1/2에이커의 비교적 넓은 대지 한 구석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개를 묶어 놓곤 하는데 이놈이 그만 옆집 아이들만 나오면 사정없이 짓어댄 모양이었다. 결국 정들었던 개를 친구 농장에 보내고 나서 영 기분이 언찮은 이 교포 왈, 왜 서로 좋게 이웃끼리 만나서 이야기하면 될 것을 굳이 변호사를 통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이웃 사이를 서먹서먹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미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교포의 불만이다.   

미국은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이고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나라이다. 격앙된 감정을 가지고 상대방과 대면하여 자기에게 피해가 오지 않도록 하면서 또 서로간의 합의 사항을 문서화하여 추후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거나 자녀 유산 상속 문제, 자산 관리 문제 등 여타의 이유로 미국인들은 변호사의 도움을 자주 받는다. 샌드위치 가게와 같은 조그마한 상점 하나를 가지고 있는 개인 비지니스라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유한 책임 회사로 만들어 놓고 만에 하나라도 사업이 실패할 경우 자신의 개인 자산에 피해가 안가도록 법적 조치를 해놓는다. 친구, 형제간 동업을 해도 철저하게 책임 범위를 문서화해놓고 사업을 시작한다.  

미국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간의 갈등은 한국과 비슷할 것이다. 단지 한가지 다른 것은 아마 한국 보다는 미국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을 더 조심하여야 할 것 같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비교해 보자.

김 부장이 오늘 아침 이 대리를 호출하더니 호되게 야단을 쳤다. 그간 영업 실적이 부서에서 최하인 것은 물론이요 최근 근무시간에 인터넷으로 온라인 게임을 하다 수차례 적발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향인데다 같은 고등학교 후배인 이 대리를 아끼는 마음에 김 부장은 이자식 저자식하며  호통을 치고 계속 일에 대한 성의를 안보이면 당장 쫓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김 부장에게 호출 된 이 대리가 방에 들어가보니 인사과에서 나온 직원이 김 부장과 같이 앉아있었다. 김 부장은 이 대리에게 인사과 직원 입회하에 오늘 이 대리에 대한 근무 태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자 하는데 동의하느냐고 물어 본다. 이 대리의 동의후, 김 부장은 그간 이 대리의 영업 실적과 자신이 적발한 금지된 인터넷 접속 내용을 설명하고는 다음 번 유사한 일이 다시 발생할 경우 해고를 하는데 의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인사과 직원이 보는 앞에서 이 대리는 싸인을 한다.  

만약 앞서 한국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미국의 이대리는 인사과에 김 부장을 고발하여 김 부장이 언어 폭력으로 자기를 위협하고 emotional stress를 주었다고 서면으로 불만을 작성할 수 있고 오히려 김 부장이 인사과로부터 경고를 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실제 필자의 부서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여성 상사와 필자의 입사 동기간에 모종의 사랑 관계가 싹이 텄던 모양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 되지 않아 종지부를 찍으면서 그만 동기가 여상사에게 손찌검을 크게 하고 말았다. 물론 동기는 즉시 해고 조치 되었지만 여상사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알고 보니 동기는 과거 여성 구타와 스토킹의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를 회사 인사과에서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사람을 채용하여 결국 여상사 자신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소장의 내용이었다.

웃고 넘어 가지 못할 사건이 몇 해 전 시카고에서 일어났다. 아마 작년 필자 칼럼에서 소개한 것 같으나 글을 접하지 못한 독자를 위해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약국 체인을 상대로 젊은 여성이 거액의 소송을 걸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 여성이 약국 에 진열된 OTC 상품칸에서 spermicidal sexual lubricant를 샀는데 그만 이 여성이 임신이 되고 만 것이다. 

이 여성의 변호사 왈, 이 제품을 구입하기 전 약사에게 제품에 대해 질문을 하였는데 약사가 이 제품은 먹는 것이 아니라 성기 주변에 바르는 제품이라는 것을 주지 시켜주시 않음으로 이 여성이 샌드위치에 발라먹고 결국 임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약사는 OTC제품에 대한 환자 카운셀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소송의 개요이다. 이 제품의 이름은 OO Jelly 이다.     

자기가 근무 약사로 일하는 약국에 강도가 들었다하자. 다른 환자들이 약국 안에 있는 상황에서 약사는 칼을 들고 있는 강도와 격투를 벌여 경찰에 인계하였다. 한국에서는 칭찬감이 될 수 있다. 왜냐면 약국의 돈도 지키고 강도로 잡았으니까. 미국 체인 약국에서 이와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였다면 근무 약사는 당장 해고될 수 있다.

해고 이유는, 얼마되지 않은 돈때문에 강도와 물리적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함께 있던 종업원과 환자들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이고 혹 옆에 있던 종업원이나 환자가 이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해를 입었을 경우 회사가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바로 Safety First라는 회사의 방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해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문화에 대해 지금까지 몇 개 열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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