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정향풀(Amsonia elliptica)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권 순 경
2018-09-27 17:57
▲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권 순 경
정향(丁香)은 유명한 한약재로서 한방에서 방향 건위제(芳香健胃劑)로 위장질환에 많이 사용한다. 대개 약은 쓴맛이 나게 마련이지만 정향은 유쾌한 향기를 갖고 있다. 정향나무의 꽃을 따서 말린 것이고 꽃에 유제놀(eugenol)이라는 정유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좋은 향기가 난다.

초본식물 중에 정향풀이 있다. 혹시 정향풀이 정향나무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정향풀을 찾아 나섰지만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정향풀은 서해안 백령도 인근에 있는 대청도에 자생하는 식물로서 서해안의 여러 섬을 따라 바닷가 습한 풀밭 또는 산자락에 주로 분포되어 있고 개체 수가 많지 않아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정향풀은 2017년 멸종위기종으로 새로 지정될 정도로 희귀식물에 속한다.

정향풀은 협죽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식물로서 40~80센티미터 정도로 곧게 자라고 윗부분에서 몇 개의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좁고 기다라며 줄기에서 서로 어긋나지만, 윗부분에서는 마주난다.

5~6월에 가지 끝에 연한 하늘색 꽃이 10송이 정도 모여서 핀다. 꽃잎으로 보이는 것은 꽃받침이며 5개로 깊게 갈라져서 수평으로 배열되어 있고 꽃 중심에 구멍이 나 있으며 꽃받침 아랫부분은 기다란 대롱 모양을 하고 있다. 수술은 5개이고 암술은 1개이며 암술머리는 둥근 형태로 뭉뚝하다.

암술과 수술은 대롱 안에 들어있으며 꽃에는 향기도 꿀도 없다. 이러한 꽃의 구조로 볼 때 타가수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암술과 수술이 밖으로 노출되어 있지 않고 꿀과 향기조차 없으니 꽃가루 매개체인 곤충을 유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음은 물론 바람을 이용한 꽃가루받이도 가능하지 않다.

타가수정에 의문이 생겨서 잠깐 곤충의 왕래를 지켜보았다. 예상대로 다른 꽃에 비해서 곤충의 방문이 거의 없었고 간혹 나비가 방문하여 꽃 중심부 구멍에 빨대를 꽂기는 했으나 잠시도 머물지 않았고 다른 꽃송이에 한두 번 더 방문했다가 즉시 날아가 버렸다.

예상 대로였지만 혹시 다른 어떤 방법이 동원되는지는 집중적인 관찰을 하지 않아 확정적으로 단정할 수 없으나 정향풀은 본래 타가수정 보다는 자가수정으로 번식하는 종으로 진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정향풀과 비슷한 식물 중에 개정향풀이 있다. 잎 모양, 줄기 등 식물의 전체모습이 비슷해서 구분이 쉽지 않지만, 잎이 약간 작으며 6~7월에 자주색 꽃을 피운다. 진짜 정향풀이 아니라는 뜻에서 개정향풀이라 한다.

정향풀 이름의 유래는 꽃이 정향나무의 꽃과 닮은 데서 비롯되었고 전한다. 원래 정향(丁香)나무의 이름은 꽃을 옆에서 보기에 “丁”(정)을 닮았고 또한 향기가 좋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향풀은 향기도 없고 꽃 모양도 정향나무꽃과 비슷하지 않다.

아무래도 정향풀은 어떤 면으로 보나 정향나무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으므로 서로를 결부시키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속명 암소니아(Amsonia)는 18세기 미국 버지니아 의사 찰스 암손(Charles Amson) 박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고 종명 엘리팁쿠스(ellitipcus)는 타원형이라는 뜻으로 잎의 형태를 나타낸 것이다.

정향풀은 열을 내리는 효과 있다고 하고 또한 민간에서 성기능 강화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발기부전에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검토된 바 없으며 유독식물이어서 장기사용은 금물이다.

현재 밝혀진 성분은 테트라하이드로세카민(tetrahydrosecamine), 플라이오카르파민(pleiocarpamine), 요힘빈(yohimbine) 등이다. 아마도 요힘빈 성분 때문에 성기능 개선제로 선전하는 모양이나 요힘빈의 성기능 개선 효과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합법적으로 사용 가능한 발기부전 기능 개선제가 비아그라를 비롯한 많은 약이 있는데 구태여 위험천만한 독성식물에 의존하려는 것은 적절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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