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기독교(基督敎)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이다. 기독(基督)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 (Christ)’의 한자(漢字) 음역(音譯)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본시(本是)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몸소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일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상숭배, 즉 타락의 길을 걸었다. 직접 보고 들어야 믿기 쉬운데, 하나님을 볼 수도,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었던 탓이 컸을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사람의 몸을 입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인성(人性)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고 들으면 유일신(神)인 하나님을 잘 믿겠기 기대하셨을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믿기 쉽게 해 주실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쓰신 마지막 카드라고 하는 말도 있다. 신이자 사람인 예수님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더 이상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정신이 번쩍 드는 대목이다. 

그럼 예수님을 보고 들은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잘 믿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우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득이 자신의 신성(神性)을 보이시기 위해 적지 않은 기적을 보이셨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자를 고치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보이셨다.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열두 제자마저 기적을 볼 때만 놀랄 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잘 믿지 못하였다. 오죽하면 수제자 격인 베드로가 “주(主)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라고 칭찬하셨겠는가?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러나 제자 도마는 부활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며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는 한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어쩌면 그의 의심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같은 의심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돼라”고 하셨다. 그 순간 도마는 즉각 무릎을 꿇으며 “예수님은 내 주시며 내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 깨달음이 얼마나 크고 놀라웠던지 그 후 도마는 멀고 먼 인도에까지 가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힌두교의 나라 인도의 기독교 신자의 수는 현재 3900만명에 이르는데, 그 씨를 도마가 뿌린 것이라고 한다. 인도 남서부 최대의 도시인 첸나이(인구 672만)에 가면 그의 무덤과 그를 기리는 성도마 성당이 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기독교는, 베드로나 도마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과 성품을 갖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렇다면 기독교 교인은 그분의 가르침대로 서로 사랑해야 마땅할 것이다.    

나는 기독교 교인들의 입에서 교만, 비난, 저주, 멸시, 조롱이 사라지고, 대신 겸손, 위로, 격려, 포용, 용서 등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말이 넘쳐흐르길 소망한다. 빛이 세상을 밝고 따듯하게 만들 듯, 또 소금이 음식을 맛있게 조미(調味)하듯, 사랑만이 세상을 밝고 따듯하며 살 맛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교회에 사랑이 넘칠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의 사랑과 신뢰를 받아,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바꾸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염원한다. 

이상, 잘 알지도 못하며 감히 내 생각을 적어 보았다. 독자 제현의 관용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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