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이번에는 어떤 물질(용질, 容質, solute)이 어떤 용매(溶媒, solvent)에 녹는다, 즉 용해(溶解, dissolve)된다고 하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대한약전(통칙, 通則)에서는 용해성(溶解性)을 ‘의약품을 고형인 경우 가루로 한 다음 용매 중에 넣고 25 플러스 마이너스 5도C에서 5분마다 30초간씩 세게 흔들어 섞을 때 30분 이내에 녹는 정도’라고 정의한 다음, 용해성의 크기를 “썩 잘 녹는다, 잘 녹는다, 녹는다, 조금 녹는다, 녹기 어렵다, 매우 녹기 어렵다, 거의 녹지 않는다”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 밑에 ‘녹는다는 말은 투명하게 녹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 여기에서 ‘투명하게’란 말은 눈에 띄는 의약품 가루가 없어진 상태를 말하는 모양인데, 나는 이 마지막 정의가 지나치게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험실에서는 용질을 용매에 넣고 저어 준 다음 여과지로 여과(filter)하여 걸러져 나온 투명한 액체를 용액(溶液, solution)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용질 분자는 용액 중에서 어떤 상태로 존재할까? 어떤 경우에는 단분자(單分子) 상태로 분산되어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분자들끼리 회합하여 이량체(dimer)나 그 이상의 다량체(polymer) 상태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살리씰산은 물 중에서 이량체로 존재한다고 한다.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 눈에는 ‘투명하게’ 보여도 나노입자 (nanoparticles) 상태로 현탁(懸濁, suspend) 분산되어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과할 때 흔히 쓰는 흔히 밀리포어 필터의 구멍 크기(孔徑, pore size)는 0.6 미크론이므로 이 필터로 여과하여 받은 여액(濾液)은 눈으로 보기에는 ‘투명한 용액’처럼 보여도, 여과 용액 중에는 600 nm 이하 크기의 나노입자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약전의 정의에 따르면 단분자 분산, 이량체 분산, 나노입자 현택액 모두가 다 ‘용액’이다. 이는 과학의 발전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비과학적인 정의이다. 이제는 용질 분자가 분산되어 있는 상태에 따라 단분자 분산, 이량체 분산, 나노입자 현택액(suspension) 등으로 구분해서 불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의약품이 위장관 내에서 단분자 분산 상태로 녹는지, 이량체 분산 상태로 녹는지, 아니면 나노 미립자 분산 상태로 현탁되어 있는지를 구별하지 않으면, 그 약물이 위장관에서 흡수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물이 위장관 막을 통과하여 흡수될 때에 분자와 미립자의 기전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분자라 해도 단분자보다 큰 다량체 분자의 막투과성이 낮다. 예컨대 살리씰산의 막투과성은 실질 분자량을 단분자의 2배로 보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나노 미립자는, 분자의 경우와 달리 수동확산 (passive dissfusion)이나 막 수송체를 이용한 능동수송(active transport)을 통하여 흡수되지 않고, 미립자 고유의 endocytosis(우물우물 삼키기)란 기전을 통해 흡수되는데, 분자 분산이냐 아니면 미립자 현탁이냐 등 분산상태를 고려하지 않으면 어떤 약물의 화학구조와 위장관 흡수와의 관련성(구조-흡수 상관성)을 잘못 해석하게 된다.

이처럼 잘못된 정보에 근거하여 신약의 분자구조를 설계한다면, 분자구조로부터 기대했던 흡수 특성을 얻지 못해 낭패를 볼 우려도 있는 것이다.

자몽 주스를 복용하면 간의 특정 효소가 과잉 발현되어 어떤 약물의 흡수와 약효발현이 영향을 받는다는 유명한 연구가 있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자몽 주스 중에 어떤 특정 성분이 어떤 상태로 녹아 있는지 규명하지 않았다.

나는 자몽 주스에는 특정 성분의 나노 미립자가 현탁되어 있지 않나 의심한다. 그리고 자몽 주스의 작용은 분자가 아닌 나노 미립자의 endocytosis에 기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주목하여 재 시험을 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될지도 모르겠다. 이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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