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사과, 배, 복숭아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2020-08-19 09:21
지금의 내 생각, 내 주장이 후세에도 옳을지 확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옛날에 경부 고속도를 만들 때 왜 막대한 돈을 들여 쓸데없는 고속도로를 만드냐고 강력히 반대한 정치 지도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또 올해로 도입 20년을 맞은 의약분업도 2000년 당시에는 반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경부 고속도로와 의약분업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한 때의 주장이나 신념이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간이 시공(時空)을 뛰어 넘는 불변의 진리를 깨닫기란 자고(自古)로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워낙 인간의 지식이 제한적인데다가, 코로나 19와 같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 사태를 예측할 능력이 없을뿐더러, 그 나마의 주장이나 신념도 자신의 고정 관념이나 선입관에 의해 왜곡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섣부른 주장이나 정책은 자칫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등 역사에 큰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어떤 주장을 펴기에 앞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으며, 또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다 바보, 미친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그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더욱 안 된다. 반대 의견도 한번 더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조화롭게 공존할 생각을 해야 한다. 어차피 나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힘있는 사람이나 단체일수록 정책을 수립하거나 주장을 하기에 앞서 신중,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여러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도 많다. 이에 대해 고 하용조 목사님은 ‘사과, 배, 복숭아가 다 한 바구니에 들어 있는 과일’이라고 하였다. 내가 속한 교단만 정통이라며 다른 교단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일 것이다. 사과와 배와 복숭아가 서로 나만 맛있는 과일이라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우리 말에 ‘우리’라는 말이 있다. 전에 ‘우리라는 우리’라는 글(약창춘추 99, 2012.4.11)을 쓴 바 있지만, ‘우리’라는 말에는 영어로 ‘we’라는 의미도 있고, 또 ‘돼지우리’의 용례처럼 우리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울타리를 친 공간 (cage)이라는 의미도 있다. 우리(we)는 같은 우리(cage)에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cage)는 넓을수록 살기에 좋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우리의 cage를 스스로 좁히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 이마에 바보, 미친 사람 또는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 우리의 cage밖으로 내 쫓는 것이 바로 그런 행위가 아닌가 한다. 또 지나친 갑(甲)질도 을(乙)들을 cage밖으로 내모는 행위일 것이다.

이렇게 나가면 cage 안에 있는 남아 있는 우리(we)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울타리 밖으로 쫓겨난 군중들의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we)가 적진(敵陣) 속의 포로처럼 역(逆)으로 낙인 찍히고 을(乙)의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런 경고는 에멀젼(emulsion, 乳濁液)의 전상(轉相, phase transition)이라는 현상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수중유 (水中油, o/w, 물 중에 작은 기름방울이 분산되어 있는 상태)형 에멀젼의 외상(外相)에 기름을 조금씩 추가해 나가면 어느 순간 에멀젼의 내외상이 뒤집혀(轉相) 유중수(油中水, w/o)형 에멀젼이 된다. 즉 밖(외상)에 있던 물이 내상(內相)에 갇혀 고립되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있는 것처럼, 완강하게 주장하기에 앞서 남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자. 그리고 적극적으로 포용함으로써 남과 내가 하나 되는 노력을 해보자. 우리(cage)를 넓혀 살기 좋은 우리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자. 사과와 배, 복숭아 모두 다 맛있는 과일 아닌가! 서로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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