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언택트 시대의 동창회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2020-08-05 09:41

나는 금년 2월, 서울대약대 동창회 상임위원회에서 2년 임기의 동창회장직 제안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지난 4년간 28회 졸업생인 C회장님이 회를 잘 이끌어 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29회 이후의 후배가 회장을 맡는 것이 순리(順理)였다. 그런데 다들 고사하는 바람에 어찌어찌 하다가 오히려 3년이나 선배(25회)인 내게 불똥(?)이 튄 것이다. 아무 걱정(?) 없이 동창회에 참석해 온 나로서는 불의(不意)의 일격(一擊)을 당한 느낌이었다.

물론 더 나이 먹기 전에 동창회를 위해 미력을 보태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임자보다 선배로서, 또 모교 교수 출신으로서 회장을 맡는 것이 아무래도 쑥스럽고 거북스러웠다. 더구나 여기저기가 몸이 불편한 나에게는 아무래도 무리 같았다. 그래서 몇 번 고사(固辭) 하였지만 결국은 피할 수가 없었다.

마음을 정하였지만 정식으로 회장에 취임하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회칙에 따르자면 회장은 반드시 2월에 열게 되어 있는 정기총회에서 선출해야 한다. 그러나 마침 시작된 코로나 19의 유행 때문에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서 회원들이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대면(對面) 총회를 열 수 없었다. 부득이 코로나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정기 총회를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사태는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따라서 언제 총회를 열 수 있을지 전혀 기약(期約)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회무 공백을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3월 1일부터 회장 직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내가 정식으로 회장으로 처신해야 되는지 여부를 잘 알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6월 5일에 열린 2020년도 제1차 상임위원회는 정기 총회를 서면(書面)총회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의를 하게 되었다. 이는 제약바이오협회 등 여러 단체에서 이미 서면총회로 대면총회를 대체하고 있는 추세를 따른 것이었다. 사실 서면총회가 법적으로 대면총회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사상 초유의 비상사태에 달리 뾰족한 대안도 없었다.  어떤 이사는 서면총회 대신 온라인 총회를 열자고 제안하였지만 온라인이 오히려 더 번거로울 수도 있다는 의견에 따라 최종적으로 서면총회를 선택하였다.

서면 총회를 준비해 보니 종래의 대면 총회를 준비하는 것보다 오히려 힘이 더 들었다. 주소가 있는 수천 명(2748명)의 동문들께 회의 자료 (결산 및 감사보고, 사업계획 및 예산안, 회장 등 임원개선안)를 프린트 하여 우송하는 일, 각 동기회장님들을 비롯한 동문들께 찬반 의견을 제시해 주십사 휴대폰 문자를 보내는 일, 동문들의 회신을 정리하는 일, 서면총회 진행 상황 및 결과에 대하여 감사위원회의 감사를 받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면총회의 결과를 다시 각 동문님들께 우편으로 알려드리는 일 등이 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정식 회장도 아닌 사람이 이 과정을 진행하려니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하나에 더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25대 동창회가 출범하였으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동창회는 ‘동창 간의 만남’을 통한 친목 도모를 주된 활동 목표로 삼아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야기된 소위 언택트(untact, 사람들이 콘택트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 시대에는 그 ‘만남’ 자체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언택트가 뉴노멀(new normal)이 된 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과연 무슨 일을 해야 좋을까가 동창회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나는 우선 동창회 홈페이지의 구축, 동창회보의 내실화 등 온라인 및 오프라인 소통의 활성화를 당면 과제로 삼을까 한다. 아울러 저서 등 동문들의 각종 업적을 수집 정리 및 전시하는 일도 구상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걱정되는 바가 하나 둘이 아니다. 하루 바삐 사태가 종식되기를 기원하며 이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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