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화열 회장
윤화열 동화약품 회장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재의 경기고)와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후 1942년 동화약방에 취체역으로 입사해 1963년 4월 동화약품 제 6대 사장에 취임했다. 

 

선친인 윤창식 창업주에 이어 2세 경영인에 오른 윤화열 회장은 제약보국의 이념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오늘날의 민족 제약기업 동화약품이 있을 수 있도록 큰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윤화열 회장은 임직원들의 사세확장 건의에도 오로지 제약 한길만을 고집한 외곬 기업인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양약만 만들고 모든 식구가 정성을 다해 잘살 수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소신을 펼쳤고, 높고 원만한 인덕과 말없이 실행하는 인격의 소유자로 사내에 인화를 두텁게 하는 데 주력했다. 

또한 자신이 돈을 벌기보다 회사발전을 위한다는 뜻에 따라 젊은 인재를 중용하고 이윤은 모두 재투자해 그의 재임기간이었던 1968년 매출 10억원을 돌파하면서 동화약품의 사세가 급신장하는 데 기틀을 다졌다.

실제로 윤화열 회장은 동화약품 제1공장, 제 2공장 및 안양공장을 준공해 의약품 생산 현대화를 이끌었으며, 1966년 ‘활명수’에 탄산가스를 첨가해 청량감을 보강한 ‘까스활명수’를 개발해 ‘까스명수’의 추격을 누르고 주력제품으로 키운 장본인이기도 했다.

‘알프스 디’와 ‘판콜’ 등 간판제품들의 발매와 현대유리공업(주) 인수, 위장운동 촉진제 메토클로프라미드 합성, 클로로포름 유해론으로 빚어진 위기도 잘 극복했다.

또한 스위스 산도스와 기술제휴, 신경안정제 ‘메로드’(디아제팜) 특허분쟁 승소, 직판 출장소 설치 등도 윤화열 사장의 재임기에 성사된 일들이다.

이러한 업적들이 그동안 ‘활명수’ 등에 의존하던 동화약품이 이후 고도성장을 달릴수 있게끔 초석을 다진 윤 회장의 경영능력과 자질을 보여주는 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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