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휘 사장
심석(心石) 이덕휘 사장은 1907년 6월 서울에서 출생해 1926년 경성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28년 식민지 치하에서 동양제약소를 설립, 당시 가장 긴요한 의약품이었던 항생제를 제조하는 데 주력하면서 항생제산업의 기틀 확립과 국민보건 향상에 헌신했다.

 

특히 해방 이후 약사라는 전문직능의 제도적인 정착을 위해 대한약사회가 창립되는 데 산파역을 맡아 초석을 닦은 데 이어 김종건 초대회장의 유고에 따른 잔여임기로 1954년 11월부터 회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

이후 1956년까지 제 2대 대한약사회장을 역임하면서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든든한 토대를 다지는 데 힘써 약사회의 산증인이자 산역사와도 같은 인물로 추앙받았다.

대한약사회가 초창기에 자체회관조차 마련하지 못했던 시절, 동양제약 사무실에서 회무를 보면서 약사회 직원들의 월급까지 대불해 주었는가 하면 약사회가 아직 재정도 조직력도 없던 시절에 자신의 뚝심 하나로 산적한 어려움을 헤쳐나간 인물로 기억되고 있을 정도다. 

약사법 제정을 통해 약사국가고시 제도가 도입되는 데 주역을 맡았던 것과 시‧도 약무과 부활, 약종상의 소분판매 문제 등을 해결해 약사면허의 존엄함을 바로잡은 것도 약사회장 재임 당시의 돋보이는 업적들 가운데 하나이다.

1946년 대한방역약품공업협회 회장, 1953년 대한약품공업협회 회장, 1961년 대한농약공업협회 회장, 1962년 한국항생물질협회 회장 등을 두루 맡아 제약산업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약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약의 날’을 제정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는 그의 업적이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약국을 경영하면서 대한약사회 자문위원으로 누구보다 앞장서 약사회관을 분주하게 오르내린 것 또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병석에서도 서초동 약사회관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함께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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