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욱 사장
최병욱 사장은 1910년 2월 서울에서 출생해 경성약학전문학교를 4회로 졸업했다. 이후 1934년 경북도립 대구의원 약제과에 들어가 약업계와 인연을 맺은 이래 1936년 해방 전‧후로 국내시장을 석권했던 금강제약에 입사 해 제품개발을 주도한 브레인이었다.

 

최 사장은 금강제약이 국내 합성 제 1호인 성병 치료제 살발산 합성에 성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머큐로크롬의 합성 또한 그의 역할이 컸다. 당시 최병욱 사장과 함께 연구‧개발에 투신했던 인물의 한사람이 바로 현재 대한약품을 이끌고 있는 이윤우 회장의 선친 이인실(경성약전 4회)사장이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머큐로크롬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를 경영하다 1944년 귀국한 최병욱은 이인실과 동업으로 이듬해 10월 서울 명동에서 대한약품의 전신인 주사제 전문 메이커 조선약품화학공업사를 창립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북송위기에서 탈출해 군산으로 피난한 끝에 회사를 재건한 이인실과 달리 부산에서 1952년 11월 설립된 백수의약의 전무이사로 취임한 최병욱은 환도 이후 숙명약대 교수, 태양제약 전무, 서울시약사회 회장, 대한약사회 회장 등을 거쳤다.

최병욱은 이인실 대표가 타계한 후 서울 영등포구 방화동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명칭을 변경한 대한약품공업사에 1968년 제 3대 대표이사로 초빙되어 취임했다.

설립자와 경성약전 동기로 오랜 동지였기에 창립취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뜻을 충실히 지켜나갈 적임자인 데다 수액제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경영인을 필요로 했기에 성사된 일이었다.

그가 대표이사를 맡는 동안 대한약품은 분위기를 쇄신하고 ‘포도당 5%’와 전해질 수액, 생리식염액을 비롯한 제품다양화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수액(輸液) 주사제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메이커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군납업체 등록과 항생제 메치실린 및 겐타마이신의 제조허가를 취득한 것도 그의 재임기간 동안 이루어진 개가였다.

덕분에 대한약품은 이후로 치료용 의약품까지 속속 추가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전문 의약품업체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구축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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