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호균 사장
신호균 사장은 1903년 9월 서울생으로 동경상대를 졸업한 후 1939년 금강제약에 총무부장으로 입사하면서 약업계에 투신했다. 

 

신 사장은 1943년 제약 중간원료를 공급하는 중앙약품공업을 설립했으며 해방 직후에 환인제약소를 창업, 치료제 및 약국방약 위주의 신뢰할 수 있는 약업인으로 굵은 족적을 남겼다.

환인제약소는 해방 직후 일본인이 경영하던 마루진제약(丸仁製藥)을 신 사장이 1945년 11월 적산(敵産)으로 인수받아 대방동에 공장을 두고 출범시킨 연고제, 시럽제, 팅크제 및 환제 전문 제약기업이었다. 해방 당시 제약업체들이 난립한 가운데서도 환인제약소는 공장을 갖추고 적지잖은 자본금으로 제약사다운 면모를 갖춘 몇 안되는 기업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신호균 사장은 1945년 전용순, 전항섭, 유명한, 이덕휘, 이경봉, 김종건, 김일영 등 당시 약업계의 거물급 인사 20여명과 함께 조선약품공업협회를 창립하는 데 핵심적인 관여한 장본인의 한사람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환인제약소는 머큐로크롬, 동상약, 건위정 등을 다량 생산하면서 주요 군납업소의 하나로 맹활약했다. 전후에는 신경안정제를 비롯한 향정신약과 혈압강하제 등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 사장은 다년간 대한약품공업협회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불굴의 의지와 기개로 제약공업 육성‧발전에 헌신했으며, 특히 정부시책에 따라 약품공업협동조합 창설에 앞장서 중소기업 육성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 위원을 연임했으며, 상표협회 회장, 세제심의위원 등 경제인이자 실업인으로서 폭넓은 활동을 통해 대외적으로 약업계의 위상을 선양했다. 약업계의 혼미한 거래질서 문제에도 항상 정론을 펼침으로써 지도자적인 역할을 다했다.

약업인으로서 그의 투철한 정신은 대한의약품판매협회의 구매조합이 세금문제로 곤경에 처했을 때 사법 및 세무당국을 설득해 난제를 원만히 해결해 준 공적만으로도 충분히 대변되고 있다.

일찍이 동아일보 동경지국장을 역임한 이채로운 경력을 바탕으로 신호균 사장은 해방 직후인 1946년 4월  ‘조선의약신보’(朝鮮醫藥新報)를 창간 했다. 타블로이드 4면의 주간신문이었던 ‘조선의약신보’는 의사, 치과의사까지 독자층으로 하는 보건종합지의 성격을 띄었다.  또 경제잡지 창간에도 손을 대 ‘에코노미스트’를 발간하기도 했다.

한편 환인제약은 훗날 1978년 이광식 사장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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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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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환인제약은 지금보다 더 발전해나가며, 더욱더 성장해 제약업계의 큰 발자취를 남길것입니다. 지켜봐 주세요..! (2018.04.15 22:53)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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