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우 회장은 천부적인 사업가로서 탁월한 영업수완 외에도 광고분야에 폭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매사에 사리가 분명하며 다재다능한 우 회장은 또한 대인관계가 좋아 친교의 범위가 매우 넓다.”

한독약품 김신권 회장이 지난 1990년 발간된 ‘한일약품 30년사’에 쓴 권두사의 일부분이다.

두 사람은 김신권 회장이 해방 후 평양에서 거처를 구하지 못해 가족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시절, 선뜻 자택의 방을 내주었을 정도로 남다른 우정을 자랑한 평생의 관포지교 사이였다.

1920년 7월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출생한 우대규 한일약품 회장은 가세가 기울자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장남으로 어려운 집안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양덕모범임업사업소 견습생으로 취직하면서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했다.

1년여 근무했을 무렵 일본인 소장은 소년 우대규에게 대처로 나가라며 평양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영리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등 여느 아이들과 달리 범상치 않아 산골에서 썩히기 아깝다며 친구가 경영하던 대형약국 ‘기꾸나약국’(菊名藥局)에 추천서를 써주었던 것.

처음 약업계와 운명적인 인연을 맺기 위해 평양으로 향하던 14살의 소년 우대규의 손에는 추전서 한장과 단돈 2원이 쥐어져 있을 뿐이었다. 약국에서 8년간 일하면서 야간상업학교에 입학해 주경야독한 끝에 우대규는 지배인으로 파격승진하는 등 독하게 약업을 익혔다.

22살 때인 1942년 독립해 ‘대일약방’을 개업하면서 사업가의 길로 접어든 우대규는 20대 중반에 이미 ‘대일약방’을 평양에서 가장 큰 약방으로 키우고 약업조합의 조합장을 맡았을 정도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1‧4 후퇴 때 남하해 대전에서 잠시 ‘대일약방’을 차렸다가 1953년 부산에 정착한 우대규는 김신권과 재회해 ‘동서약품’을 차렸다. 종전 이후 두 사람은 한독약품의 전신인 연합약품을 공동창업했고, 우대규는 전무를 맡아 6년여 동안 동고동락했다.

1959년 2월 자본금 1억3,500만원으로 대풍신약(주)를 창업해 대표이사직을 맡으면서 홀로서기에 나선 우대규는 농약수입 뿐 아니라 국내 최초로 ‘약사 세일즈맨’ 제도를 도입해 사업을 크게 일구더니 1964년 2월 한일약품을 흡수합병해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한일약품은 설파제 ‘바이레나’, 간장약 ‘프로헤파룸’, 고지혈증 치료제 ‘메바로친’ 등 히트작을 내놓았고 바이엘과 손을 잡으면서 1980년대까지 최상위급 메이저 제약사로 군림했다.

다만 건강상의 이유로 1990년대 중반 2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직후 IMF 위기가 도래해 회사가 대한생명을 거쳐 CJ제약사업본부에 통합되면서 2006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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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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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아직도 제약업계에 몸담고 있습니다.
회장님을 모시면서 간간히 들려주시던 회장님의 말씀과 음성이 아련합니다.

(2016.05.02 08:17)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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