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한 유한양행 사장
소유와 경영분리, 가장 존경받는 CEO

“질병으로 고통받는 민족을 위해 조국에서 사업을 해보겠습니다.”

1895년 평양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미시간대학 상학과를 마치고 식품사업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한 청년이 1926년 독립운동가 서재필에게 포부를 털어놓은 후 그 해 12월 서울 종로에 제약기업을 차렸다.

그가 바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이자 재계의 거성으로 꼽히는 유일한 박사이다.

우선 그는 한약이나 매약 정도밖에 없었던 1930년 무렵의 우리나라에 현대적인 의미의 의약품을 도입해 제조하고 일찍이 중국과 만주 등으로 수출한 약업계의 개척자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갔을 때는 남가주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데 이어 한‧미 상공회의소를 설립했으며, 미국 극동군의 정보장교로 2차 대전에 참전했다. 해방 후 귀국해서는 초대 상공회의소 회두(會頭)를 맡아 산업계 발전에 초석을 다졌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수차례 입각을 교섭받았지만 “나의 길은 오로지 기업인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모르핀을 수입해 팔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보고한 임원을 크게 호통치고 내쫓은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유일한 사장은 일제시대부터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는 기업경영”을 실현했다. 

국세청에서 1968년 세무사찰을 나왔을 때도 투명경영이 명백히 확인됨에 따라 오히려 대통령으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계기가 되었을 정도였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임직원 가운데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고 평사원에서 CEO를 선임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한 것은 아직까지 전근대적인 방식의 기업세습이 횡행하는 국내재계의 풍토에 미루어 볼 때 너무나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962년 우리나라 민간기업으로는 경성방직에 이어 두 번째로 기업을 상장(上場)해 투명한 경영을 실천하면서 동시에 연세대 의대와 보건장학회, 유한사우공제회 등에 다량의 주식을 희사했으며, 사재로 유한중‧공업고등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으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각별한 힘을 기울였다. 유한재단을 설립해 각종 자선사업을 전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유일한 사장은 대통령 국가공익표창, 보사부장관 표창, 재무부장관 모범납세인 표창, 국무총리 우량상공인 및 모범 상장회사 표창, 국민훈장 모란장 등 다채로운 수상경력이 돋보인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이윤은 사회에 되돌려 줘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대로 1971년 3월 전 재산인 회사주식 14만941주를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이 세상이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움에 빠뜨렸던 일은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돋을새김으로 장식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독자 의견남기기

독자의견쓰기   운영원칙보기

(0/500자)

        

등록
댓글 0   숨기기
독자의견(댓글)을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