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태어난 한 소년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SF영화들을 보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 비디오는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수십 번을 넘게 돌려보았고,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영화 백투더퓨처, 매트릭스에 빠져 살았다. 누군가에겐 말도 안 되는 허구였지만, 그에게 SF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더 없이 좋은 또 하나의 세계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한 후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게 됐지만, 어렸을 적 즐겼던 상상의 세계를 여전히 그리워했다. 언젠가부터 머릿속에는 이야기들이 펼쳐졌고, 둥둥 떠다니는 상상의 조각들을 흘려보내기 아쉬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한 권의 책이 됐다. SF 장편소설 ‘파라미터O’를 출간한 신인 작가 이준영 씨 이야기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국내 한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작가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에게 주경야작(晝耕夜作)과 첫 장편소설 출간 소회를 물었다.

작가 이준영 씨는 서울대 약대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약제학을 전공한 후 현재는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부터 작가를 꿈꾼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릴 적 취미와 환경이 그를 작가의 길로 한 걸음, 두 걸음 이끌었을 뿐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영화, 소설, 만화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많이 접하며 자라서인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종종 머리를 스쳐 지나가곤 했다”며 “당시엔 그렇게 떠오른 생각들을 별 볼일 없는 망상으로 치부했지만, 언젠가부터 그냥 흘려보내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의 형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결국 당시 남긴 습작은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우수상이라는 성과를 맺었다. 그는 “이때 출간한 SF 단편소설 ‘님아 그 우주를 건너지 마오’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 결국 장편소설 ‘파라미터O’까지 출간하게 됐다”며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장편소설 ‘파라미터O’는 방사능으로 대기가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종족 보존을 위한 작은 시설에서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설의 관리자이자 엔지니어인 주인공 ‘조슈’는 우연히 구형 전파수신기를 얻게 되고, 그것을 통해 시설 밖으로부터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파를 수신하게 된다. 과거 참극에 휘말려 시설 밖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어머니 ‘가야’일 거라는 기대를 갖고 발신지를 찾아나서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의 흔적은 찾지 못한다. 대신 ‘이브’라는 새로운 ‘기계종’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소설의 배경에는 어머니를 향한 주인공의 애틋함과 그리움의 정서가 깔려있다. 이준영 씨는 책에 쓴 ‘감사의 글’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과 애정 덕분에 한 명의 건강한 인격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며 “올곧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건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고 전한다. 저자의 정서가 소설 배경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이준영 씨에게 부모님은 작가로서의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유년 시절, 자신보다 오래된 SF영화들을 자연스레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그는 “당시 수십 번도 넘게 돌려본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은 아버지의 소장품이었다”며 “덕분에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여전히 SF 영화에 빠져 살았고, 결국 SF 장르의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소위 ‘성덕(성공한 덕후)’이라 불릴 만한 오늘의 결과는 아버지의 오래된 영화 비디오테이프와 어머니의 사랑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며 글을 쓰는 주경야작의 삶을 산다. 하지만 부담은커녕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당연히 ‘창작의 고통’은 있다. 하지만 “느긋하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그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무리하지 않고 시간을 투자해 천천히 나아갈 수 있는 점이 SF소설의 생명인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노하우”라고 털어놓았다. 

‘조급해하거나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일과 책,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비결이라는 작가 이준영 씨. 이는 비단 글을 쓸 때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의 제약은 늘고, 사람과의 관계는 점점 인색해지는 요즘, 새해의 시작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마음과 자세가 아닐까. 

그는 ‘파라미터O’를 시작으로 ‘미래정보역행금지법’, ‘비를 내리는 소녀’ 등 두 편의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미래정보역행금지법’은 미래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된 근미래 한국 사회를 다룬 작품이다. ‘비를 내리는 소녀’는 우리나라 정서를 담은 한국식 판타지 소설로, 기우제에서 제물로 바쳐진 소녀 ‘구름’이 겪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두 작품 모두 한국이 배경이다.

특히 ‘비를 내리는 소녀’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상상해 낸 세상이 얼마나 세련되고 멋지며 아름다운지 보여드리고 싶다”는 이준영 씨는 동시에 직장인으로서의 자신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글에는 저자의 인격과 가치관이 투영되는 만큼, 직장인으로서의 자신과 작가로서의 자신의 선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축하해주신 주변 분들과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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